[취재일기] 요즘 경제부처는 ‘법사위 포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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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이달 초까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기업과 관련된 두 개의 ‘묵은 법안’이 계류돼 있었다. 두 법안의 희비는 그러나 임시국회에서 엇갈렸다. 하나는 별 논란 없이 슬그머니 상정돼 11일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반면 또 다른 하나는 법사위 소위에도 상정하지 못했다.

 전자는 ‘상장회사 준법지원인제’다. 이 법 통과로 변호사 1000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법조인 출신이 많은 법사위는 이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재계에선 “기업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변호사들 일자리를 챙겨줬다”는 비판이 거세다.

 후자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현행법을 고쳐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게 골자다. 기업의 지주사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2년 전 정부가 제출했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는 지난해 4월 어렵사리 통과했다. 하지만 법사위로 넘겨진 뒤 서랍 속에서 벌써 1년째 잠자고 있다. SK·두산 등 지주회사 체제로 간 10여 개 기업은 속이 탄다. 현행법이 유지된다면 이들의 금융 자회사는 올 7월부터 하나 둘 불법이 된다. 지배구조를 투명화해야 한다며 지주사 체제를 권장해 온 정부도 난감한 상황이 됐다. 그래도 법사위 의원들은 ‘나 몰라라’다.

  이처럼 소관 상임위를 통과한 경제 관련 법안이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변호사·의사 등 고소득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세무검증제’도 그랬다. 세무검증제의 경우 전문직 출신 의원들의 심기를 거스를까 ‘성실신고확인제’로 이름을 바꾸는 성의표시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경제 부처에선 ‘법사위 포비아(공포증)’란 말까지 나온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4월 국회에서 상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통과를 낙관하긴 어렵다. 법안 상정을 저지해 온 P의원이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해서다. 소관 상임위에서 이미 논의와 절충을 거친 사안이지만 P의원은 막무가내다. 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노릇을 하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장은 묵힐수록 맛이 좋아진다지만 법안은 반대다. 법사위가 계속 입맛대로 법안을 쥐락펴락하며 불확실성을 키운다면 나라 경제·기업의 앞날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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