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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계약했다고 전기 그냥 안 준다 … 그게 중국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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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옛 상점 자리 복원한 도면도 공개“얼마 전 굴지의 한국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전기 공급이 안 됐다.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전봇대를 설치해 준다’고 써 있지 않느냐며 따졌다. 그러나 중국에서 ‘전봇대’와 ‘전기’는 구별된다. 전기 공급 설비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 이런 걸 모르면 ‘관시(關係·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다. 그게 ‘진짜 중국식’이다.”

 법무법인 씨엘의 한·중통상법률센터 대표로 있는 이용남(51·사진) 중국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에서 10년간 판사를 지냈다. 현재는 법무법인 씨엘에서 한·중 간 법적 분쟁 컨설팅과 자문 등을 하고 있다. 중국 판사 출신 변호사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건 그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현장의 중심에서 체득한 쏠쏠한 정보가 그만큼 많다. 29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중국 비즈니스’의 허실을 들어봤다.

 그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계약서 문구상 ‘한국식 중국어’ 문제를 가장 먼저 지적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법률 용어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용어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특히 중국인들은 제품 카탈로그(설명서)를 매우 중시한다. 제품 설명서도 지적재산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현지의 다른 기업 제품 설명서를 참조해 만드는데 이는 나중에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한국 기업들이 중국어로 쓴 것 중 어색하거나 틀린 것이 너무 많다. 중국에 진출한 막걸리만 봐도 그렇다. 막걸리를 쌀술이라는 뜻의 ‘미주(米酒)’라고 번역해 제품 설명서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술 하면 당연히 쌀술이라 상품 호소력이 전혀 없다.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을 보면 한국식 명함을 그대로 중국어로 번역해 내민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은 그게 무슨 기업인지 직책이 뭔지 모른다. 따라서 중국 회사법에 부합되는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영업부장은 중국 명함에는 현지 회사법에 따라 ‘영업과장(營業科長)’이라고 표기해야 옳다. 또 한국 기업의 상무는 ‘동사(董事)’ 혹은 ‘집행동사(執行董事)’라고 표시해야 현지인들이 이해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업체, 기업가의 문제점은 뭔가.

 “현재 한국의 대외투자 40% 이상을 중국에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 진출 때 가장 취약한 세 가지 점은 첫째 법률, 둘째 중국어. 셋째 풍속이다. 대외투자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바로 법적인 문제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익만을 중요시하다 보니 법률 문제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법에 따라 한국의 ‘발명 특허’는 반드시 추가로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대기업마저 이런 걸 제대로 하지 않아 골치를 앓은 사례가 많다.”

 -중국에서는 관시가 중요하지 않나.

 “중국법은 영미법이 아닌 대륙법에 속하나 정확히 말하면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법’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법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법이 더욱 완벽해졌다. 헌법에도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제 중국은 법제 나라다. 일단 분쟁이 생기면 법을 기준으로 해결하지 관시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법을 무시하면서 관시에 의존한 사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관시여야 한다.”

-현지 진출 기업이 참고할 만한 중국 판사 경험을 얘기해 달라.

 “계약서는 사업상 최후의 보루라 잘 만들어야 한다. 중국어와 외국어 계약 내용이 다를 때는 중국어 계약서 내용을 기준으로 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다. 또 법적 문서의 ‘부호 하나’로 돈이 왔다 갔다 한다. 문장 부호가 영어와 달리 특이한 것들도 있다. 구별해 써야 한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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