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퇴출 코스닥 기업 대표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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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부자금 수혈은 대표이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증시 퇴출 위기에 몰린 코스닥 기업 ‘씨모텍’ 이야기다(본지 3월 28일자 E13면). 이 회사 K대표는 감사의견 ‘거절’ 통보를 받은 지 이틀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씨모텍의 ‘비극’에는 코스닥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씨모텍은 ‘T로그인’ 등 무선 모뎀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회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 사위가 임원을 역임해 ‘MB 테마주’로 관심을 받기도 했다. 바이오·전기차사업으로의 진출도 노렸고, 저축은행 인수도 추진했다. 올 1월에는 유상증자를 실시해 287억원의 자금도 확보했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잘나가는’ 코스닥 기업이었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자금난에 시달렸다. 담당 회계법인은 24일 “회사의 투자 및 자금 관리 취약으로 ‘자금거래의 실질’을 확인할 수 없다”면서 감사의견을 거절했다. 씨모텍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거래도 중지됐다. 결국 K대표는 26일 경영자로서의 책임감과 투자자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코스닥에선 지난해에만 31개 기업의 횡령·배임사건이 발생했고 394개사가 대표이사를 바꿨다. 돈이 궁하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바이오·녹색사업 등으로 회사를 포장한다는 점도 부실 코스닥 기업의 공통된 특징이다. 최근 에듀패스는 전(前) 대표이사 등 5명에 대해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했다고 공시했고, 넥서스투자에선 자기자본 대비 67%에 해당하는 247억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잦은 대표이사 교체와 경영 불안정으로 실적이 나빠지고 있는 코스닥 기업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따지고 보면 대박 꿈을 좇아 기업의 실력은 따지지 않고 ‘묻지마’ 투자에 나선 개인들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마련한들 투자자들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은 자기가 아는 종목에만 투자했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시장에서 가장 확실한 판단의 근거는 기업의 실적이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거품은 반드시 꺼지기 마련이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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