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칵테일] “법당에서 모델이 옷을 벗습니다” “순수를 보겠다는데 그쯤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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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칵테일 >> “법당에서 모델이 옷을 벗습니다” “순수를 보겠다는데 그쯤이야”

‘민머리.’ 김아타 작가의 아이콘이다. 왜 머리를 박박 밀고 다니는 걸까. 다음은 그의 육성 고백이다.

 “1998년 2월 23일이었다. 더 뮤지엄 프로젝트의 ‘니르바나 시리즈’ 첫 작업을 하던 날이었다. 한국의 사찰 법당에서 모델들이 삭발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들에 앞서 내가 먼저 머리를 밀었다. 큰스님께서 직접 삭도를 들고 쓱싹쓱싹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시원해서 눈물이 났다. 남녀 모델 머리를 깎고, 발가벗겨 투명 아크릴에 넣은 뒤 전쟁·섹스 등의 주제로 사진을 찍는 작업. 그러나 종교를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건 아니었다. 그건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일상과 분리하지 않고 정착시키는 과정이었다. 또한 내 안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도 걷어내는 일이었다. 그 뒤로 머리를 밀고 다녔다. 작업 전날, 큰스님과 주고받은 선문답이 기억난다.

 아타: 순수가 어떤 색입니까?
 스님: 진광불휘(眞光不輝)라….
 아타: 내일 그 색을 볼 것입니다.
 스님: 보세요.
 아타: 법당에서 모델이 옷을 벗습니다.
 스님: 순수를 보겠다는데…, 문제없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산문을 나오면서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큰 짐으로 다가온 작업이었던 모양이다.

뉴욕 중앙일보=박숙희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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