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저승사자’ 레비, 카다피 돈줄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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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5일 물러난 스튜어트 레비(Stuart Levey·47·사진) 전 미국 재무부 차관이 퇴임 직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미국 내 자산을 신속히 동결해 돈줄을 상당 부분 막는 활약을 펼쳤다. 2005년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를 동결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압박해 ‘북한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워싱턴 포스트(WP)는 2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이 지난달 단행한 자국 내 리비아 자산 동결 과정을 소개하며 레비 전 차관의 활약상을 전했다. 카다피가 시위대에 공중 폭격을 가하는 등 현지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던 지난달 23일 오전 8시30분. 백악관 지하상황실에서 리비아 제재안 마련을 위한 고위 참모회의가 열렸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군사 개입 등은 리비아 내 미국인의 안전문제가 걸려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경제제재가 대안으로 채택됐다.

 백악관은 퇴임을 이틀 앞둔 레비에게 구원요청을 했다. 레비는 과거 리비아 제재에 관여했던 재무부 당국자들을 모아 신속히 추적에 나섰다. 카다피와 측근 등이 포함된 핵심 리비아인 400여 명과 리비아 기업의 미국 내 자산 목록이 하루 만에 작성됐다. 레비의 재무부 차관 근무 마지막 날인 25일엔 낭보도 날아들었다. 미국 내 리비아 자산이 애초 예상했던 1억 달러(약 1130억원)를 훨씬 뛰어넘어 297억 달러(약 33조원) 이상이란 재무부 관리들의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이날 오후 8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은 리비아 거주 미국인들이 무사히 출국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 13566호에 서명했다. 23일 대책회의 뒤 약 72시간 만이었다.

 WP는 “통상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금융제재가 이처럼 단시간에 실행된 건 유례가 없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동결된 미국 내 리비아 자금은 320억 달러(약 35조원)다. 2004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에 임명된 레비는 7년 가까이 북한·이란 등에 대해 효과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했다.

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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