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풍요로운 들판 양보하고 사막으로 간 낙타, 군자 아닐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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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최형선 지음, 부키
256쪽, 1만4000원

제목의 궁금증부터 풀어보자. 낙타는 4500만년 전 지구상에 나타나 200만~300만년 전까지는 북아메리카에서만 번성했다. 그런데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인 180만년 전, 낙타는 알래스카를 거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사막에 정착했다. 왜 하필 척박한 사막을 택했을까. 지은이는 낙타가 포식자를 피하거나 다른 동물들과 먹이 경쟁을 벌이는 대신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한다. 낙타는 등의 혹에 여분의 지방을 몰아넣었다. 여차하면 지방을 분해해 양분과 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 밖에도 다리 길이부터 적혈구 구조까지 모든 것이 사막에서 견디도록 최적화됐다. 낙타는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가속과 감속을 하지 않고 평균 시속 5㎞로 무아경에라도 빠진 듯 터덜터덜 걷는다. 달릴 줄 몰라서가 아니라 안 달리는 것이다. 이런 낙타에게서 지은이는 군자의 면모를 읽는다.

 “사막에서 사는 낙타는 풍요로운 들판과 숲을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지닌 것일까. 그렇다면 낙타는 예(禮)를 아는 동물일지도 모르겠다.”(100쪽)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에서 지은이는 사냥 성공률은 30%에 그치지만 남의 먹이를 뺏거나 시체를 뜯어먹는 등의 잔꾀를 부리지 않는 치타, 먹이를 찾아 에베레스트를 넘는 줄기러기, 어려운 환경을 함께 이겨내는 일본원숭이의 조화로운 삶, 5000만년을 이어온 박쥐의 생존 법칙 등을 다룬다. 생태학박사인 지은이가 들여다본 것은 승자독식의 정글이 아니다. 자신이 남과 다름을 알고 각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평화로운 공존을 이뤄가는 동물들을 통해 인간의 생태계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중학생 이상 권장.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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