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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끈 구제역 대책 …‘벌집사육’ 문제는 손도 못 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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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황식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축산업 선진화 방안’ 발표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배석해 있다. [김도훈 기자]


정부가 구제역이 끝나는 시점에 축산업 선진화 대책을 내놨다. 지난달부터 한 달 넘게 준비한 내용이다.

 핵심은 방역체계를 확 뜯어고치는 것이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24일 정부 종합청사에서 열린 대책 브리핑에서 “방역 매뉴얼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완전히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초기 방역체계를 강화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이번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초동대응 실패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조치다. 구제역 같은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곧바로 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키로 했다. 새로운 악성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초기부터 해당 농장뿐 아니라 전국의 분뇨·사료차량을 일정 기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네덜란드에서 시행하고 있는 ‘일시정지(스탠드 스틸·stand still)’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동통제는 모든 차량에 대한 소독과 역학조사가 끝나야 해제된다. 지방자치단체의 방역기관에 항원진단 키트를 보급하고 권역별 정밀 분석실도 만든다. 현재 보급돼 있는 항체진단 키트로는 잠복기 바이러스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군(軍)의 공조체계도 강화된다. ‘민관 합동 가축전염병 기동방역기구’가 대표적이다. 평시에 농식품부와 지자체 공무원, 가축위생방역본부 직원과 지방 군·경 등을 중심으로 조직해뒀다가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곧바로 투입하는 기동타격대 같은 조직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초기에 군부대가 투입되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당초 축산농가에만 적용하려던 공항소독 의무화는 일반인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대책이 ‘축산 선진화’가 아닌 ‘방역 선진화’에 그치고 말았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앙의 근본 원인은 밀집 사육에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사료 공급과 분뇨 처리 등의 기반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육 마리 수만 늘린 탓에 면역력이 떨어지고, 한 번 병에 걸리면 순식간에 번진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같은 진단에 동의한다. 이 때문에 농식품부 내부에서는 사육 마리 수를 제한하는 제도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축산농가의 반발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2012년까지 허가제를 도입하는 정도에서 절충했다. 그것도 대규모 농장들만 대상이다. 소규모 사육 농가는 등록제를 적용한다. 농식품부 이상길 식품산업정책실장은 “농가가 기를 수 있는 가축의 마리 수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는 견해가 많았다”며 “허가제의 기준을 잘 운영하면 사육규모 제한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허가를 받은 농가나 허가 대상이 아닌 농가가 규모를 늘리는 것을 막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정부는 대신 농가의 책임을 크게 늘렸다. 익명을 요구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방역의 1차 책임은 결국 농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입하는 사람과 차량의 기록, 소독·샤워실 설치가 의무화된다. 이행하지 않은 농가는 정책자금을 주지 않을 계획이다. 앞으로 몇 년간 백신을 맞혀야 하는 만큼 농가에 일정 비용을 물릴 예정이다. 전염병 발생 시 보상기준도 보다 엄밀히 수정해 불합리하게 많이 받는 경우를 줄일 생각이다.

 단기적으로는 빨리 청정국 지위를 회복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완전 청정국이 아닌 백신접종 청정국이다. 이나마 쉽사리 얻기 어렵다. ▶백신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최근 2년간 발병 사실이 없어야 하며 ▶최근 1년간 바이러스 부재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농식품부는 일단 6개월 후 2100만 마리에 이르는 모든 우제류(발굽이 두 개인 가축)에 대해 3차 접종을 실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공무원과 수의사를 동원하기 어려우니 자가접종 방법을 교육할 예정이다. 또 백신 전문 연구센터를 만들고, 국내에 백신 생산기반을 갖추는 등 백신접종국 환경을 갖춰나갈 계획이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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