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1주년] 북핵 압박하던 중·러, 북한 지지로 돌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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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은 동북아 정치 지도를 바꿔놓았다. 북핵을 압박하던 중국·러시아가 북한 지지로 돌아서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이라는 냉전시대의 대치 구도가 형성됐다. 한국은 다국적 조사단의 과학적 조사를 통해 진범(북한)을 잡아내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추진했다. 한국의 냉정한 대응을 높이 산 미국은 ‘선 남북관계 개선, 후 6자회담’ 원칙에 합의해줘 한국은 대북정책에서 최초로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한국은 안보리에서 중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어정쩡한 의장성명 도출에 그쳤다. 여기에 1년이 다 되도록 북한의 사과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1992년 수교 이래 18년간 발전해온 대중 관계가 천안함 사건으로 정체된 것은 뼈아프다. 미국은 천안함 폭침의 가장 큰 수혜자로 평가된다. 천안함 대응 과정에서 한국을 적극 지원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을 매듭지어 한·미 동맹의 결속도를 사상 최고로 끌어올렸다. 중국이 안마당으로 여겨온 서해에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을 보내 대중 견제의 새로운 교두보도 확보했다. 2009년 일본 민주당 정권 등장 이래 삐걱대던 미·일 동맹도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원상복구시켰다.

 반면 중국은 천안함 폭침으로 적잖은 손해를 봤다. 북한을 대놓고 감싸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충돌했다. 게다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과 남중국해의 제해권을 거칠게 주장함으로써 일본·동남아 국가와도 마찰을 빚었다. 중국의 위협에 놀란 한국·일본·동남아·호주·인도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아태 지역에서 ‘위협의 균형(balance of threat)’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북한에 강력한 영향권을 구축했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 차례나 중국을 찾아 원조와 경협을 요청했다. 올 초에도 멍젠주(孟建柱·맹건주) 공산당 공안부장 등 중국 실력자들이 잇따라 방북해 결속을 강화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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