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닐 “일본은 무슨 일 있어도 엔화 강세 막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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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

얼마 전 짐 오닐(Jim O’Neill·사진)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은 고객에게 ‘일본과 엔화(Japan and the Yen)’라는 제목의 글을 보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인에게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시작한 이 글에서 그는 엔화 가치 하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닐 회장은 “일본의 국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의 220%이고 이는 그리스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라며 “(대지진으로) 이제 일본의 도전과제는 한 단계 어려워졌으며 일본이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일은 엔화의 추가 강세”라고 밝혔다.

 그는 “많은 경제 전문가가 일본은행(BOJ)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디플레이션을 막고, 엔화의 질주를 막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점에 대해 당황하고 있다”며 “골드먼삭스 환율모델에서 엔화는 30% 과대평가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지진의 참상에서 신속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며 ‘약한 엔화’를 주문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엔화의 흐름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엔화의 향방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도 요동치기 때문이다. 일본은 해외 순자산(2009년 말 기준)이 약 3조 달러로 압도적인 세계 최대 채권국이다.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이 약 1조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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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의 우려를 반영하듯 최근 엔화 가치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대지진 전까지만 해도 엔-달러 환율은 83엔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11일 대지진 이후 엔화 가치는 치솟기 시작했다. 17일에는 엔화 가치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76.25 엔에 이르렀다. 결국 18일에 주요 7개국(G7)이 시장 개입에 나서자 82엔까지 떨어졌다. 지난 주말 연합군의 리비아 공습 후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강해지면서 다시 가치가 올라 80엔대에 머무르고 있다.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일본 경제의 규모와 안정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지진을 겪었지만 일본 경제는 여전히 견실하다고 분석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이 개선된 것도 최근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엔화의 향방은 국내 경제와 연관이 깊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 관계인 국내 기업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는 기업도 많다. 이 때문에 엔화 가치의 흐름은 국내 기업의 이익 흐름과 직결된다. 엔화 가치가 1엔 오르면 도요타자동차의 영업이익은 연간 300억 엔 줄어든다.

 엔화 흐름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는 당분간 강세를 보인 뒤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 의견을 같이한다. 하지만 ‘당분간’이 얼마나 될 것이냐에는 의견이 조금씩 엇갈린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열린 제7차 경제정책협의회에 보고한 ‘일본 대지진·중동 사태 이후 국제금융 및 원자재 시장 동향’에서 “일본의 지진과 중동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엔화 강세, 미 달러 약세’ 압력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 강세는 짧고 약세는 길 것으로 예상했다. 오 연구원은 “현재 엔화 강세는 일본의 복구 재원 마련과 현금 확보가 해외투자 회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라며 “피해 확산이 멈추고 복구재원 조달 계획이 확정되는 시점에서 엔화의 추세적 약세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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