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이 앞세워 영웅처럼 등장 … 카다피, 자국민을 인간 방패 삼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히틀러식 상징 조작, 열광하는 여성과 아이들, 폐허 속에 일어선 영웅의 이미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한 편의 TV ‘연설 쇼’(사진)를 펼치며 6일 만에 공개 장소에 나타나 건재를 과시했다. 서방이 폭격을 개시한 지 3일 만이다. 카다피는 22일 밤(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관저·군사시설 복합단지인 바브 알아지지야의 폭격당한 건물에서 지지자들 앞에 나타나 연설했다. 이 모습은 리비아 국영TV를 통해 생중계됐다. <관계기사 14면>

 카다피는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들(연합군과 시민군)을 물리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우리는 그들을 이길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카다피는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 부당한 공격에 대항하는 시위가 도처에서 열리고 있다”며 “이번 공격은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생을 마감할 파시스트 일당의 소행”이라고 역설했다. 카다피는 연합군의 공격을 십자군 전쟁에 재차 비유한 뒤 “제국주의·파시스트 집단의 침략에 대항하는 전쟁에 이슬람교도들은 동참하라”고 촉구하며 연설을 마쳤다. 외신들은 그의 연설을 ‘카다피식 심리전’으로 해석했다.

카다피는 우선 자신이 연설하는 앞에 수천 명의 군중을 배치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음을 강변했다. 이들은 초록색 리비아 국기를 흔들며 “카다피 지지”를 외쳤다. 적잖은 여성과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서방 언론에서 ‘인간 방패’ 논란을 빚고 있는 이들이다. 21일 영국 타이푼 전폭기가 바브 알아지지야의 전술 목표에 2차 폭격을 시도하다가 이들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다.

트리폴리에서 취재 중인 데미언 매켈로이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는 “카다피가 42년간 신격화된 데다 부족 내 영향력도 막강해 인간 방패로 자원한 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라크 등에서 포로를 방패로 내몬 경우는 있었지만 자국민을 방패로 삼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