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자주 그린 물고기 … 그 비늘 표현하다가 시퀸과 만나게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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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노상균의 ‘별자리’ 시리즈중 ‘염소자리’(부분). 218㎝ 정사각형의 대형 화폭에 시퀸을 이어 붙였다. 평면이지만 착시효과로 입체감이 느껴진다. 미생물 같은 단순한 이미지 속에 초월적 신비감을 담았다.

그는 싸구려 스팽글로 구도를 하는 남자다. 소위 반짝이, 밤무대 가수 의상으로 잘 알려진 스팽글, 정식 명칭 시퀸(sequin)으로 작업한다. 동대문시장에서 사온 지름 6㎜짜리 시퀸 수만 개를 2~3m의 대형 화폭에 붙이고 붙여서, 우주를 만든다. 대부분 원이거나 미생물을 닮은 그의 이미지는 끝없이 순환하면서 보는 이들을 빨아들인다.

연속으로 붙인 시퀸은 사실 평면이지만 묘한 입체감을 자아내며 관객들을 시각적으로 홀린다. 평면 안에 돌연 입체가 구현된 듯한 착시효과와 함께, 작가가 느꼈을 아찔한 몰아의 경지를 고스란히 나눠준다. 가장 야한 ‘속(俗)’의 소재로, 초월적 ‘성(聖)’의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시퀸의 작가’ 노상균(53·사진)씨가 4월17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개인전을 연다. 6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시퀸으로 감은 불상을 내놓으며 주목 받은 그는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뽑혔고, 세비아 비엔날레·독일 ZKM 등에 초대되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2005년부터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별자리(Constellations)’ 시리즈가 선보인다. 얼핏 분열하는 세포나 미생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파랗거나 분홍색의 별자리이다. 실제 별자리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캔버스 위에 쏘고 드로잉을 한 뒤, 별들을 크고 작게 변형해 새로운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작가의 별자리인 사수좌(射手座)를 비롯해 지인들의 별자리를 옮겼다.

 “거대한 우주에 있는 큰 별들은 서로 수억 광년씩 떨어져 있지만 별자리로 이어놓으면 미세한 크기의 단세포 동물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우리 인간들도 우주에서 바라보면 미생물처럼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지 않을까요? 별자리의 그런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에게 별자리란 인류 최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봤고, 별을 보며 삶에 대해서 생각했겠죠. 거기서 뭔가 의미와 지혜를 찾으려 했고요. 그게 별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어려서 물에 빠진 경험 때문에 물고기를 자주 그렸던 노씨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하다가 얇은 플라스틱 장식조각인 시퀸과 만나게 됐다. 시퀸은 붙이는 각도에 따라 빛을 받아 독특한 입체감을 자아낸다. 작은 화폭에서는 시퀸의 효과가 잘 나지 않아 대형 작업을 많이 하고, 길게는 3개월씩 걸리기도 한다. 일일이 실리콘을 바르고 실로 이어 붙이는 작업 때문에 시력이 나빠진 것은 물론, 사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작업하니 어깨·목결림이라는 ‘직업병’도 얻었다.

 그럼에도 시퀸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 “가치 없는 것들이 노력을 통해 가치 있게 변하고, 쌓이고 쌓이면 축적해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매력”이라고 답했다. “망치는 작업은 있지만 노력에 대한 배반은 없는 작업”이라고도 했다. 전시에는 별자리 시리즈 12점 외에도 불상과 마네킹 입체 등 총 3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4월 28일 뉴욕 브라이스 월코비치 갤러리로 옮아간다. 02-549-3031.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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