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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몽땅 덜어내고도 천연덕스러운 … 그에게 시는 밥이다 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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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인 김요일씨는 2000년 무렵 3년간 시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새로운 걸 시도하다 긴 슬럼프에 빠졌었다. 그가 1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애초의 당신』을 냈다. [김도훈 인턴기자]


시 한 줄 읽지 않았던 386들도 그의 노랫말에 감동받은 적은 있다. 시인 김요일(46)씨. 가수 이선희의 1989년 히트곡 ‘겨울 애상’ 가사를 그가 썼다. 지금 읽어봐도 촉촉한 노랫말이지만 그걸 쓰게 된 사연이 더 흥미롭다. 대학 입학 전, 적(籍) 없이 떠돌던 20대 초반, 김씨는 친구로 지내던 동갑내기 작곡가 송시현씨 집에 놀러 갔다. 마침 라면을 끓이던 송씨, 멋진 가사 하나 써주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고 으름장 놓았단다. 다급해진 김씨, 실제로 라면 끓는 5분 동안 뭔가를 끄적거렸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겨울 애상’ 노랫말이다. 김씨는 90년 문예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다. 공식 시인이 되기 전 이미 그는 시인이었던 셈이다.

 범재(凡材)들의 뒷골 좀 당기게 하는 ‘전설적인’ 에피소드인데, 그런 김씨가 두 번째 시집 『애초의 당신』(민음사)을 냈다. 94년 시집 전체가 시 한 편인 실험 장시집 『붉은 기호등』 이후 정확히 17년 만이다.

 16일 오후 김씨가 대표로 있는 서울 신수동의 ‘아이들판’ 출판사 사무실을 찾았다. 시집 얘기보다 근황이 궁금했다.

 3년 8개월 전 김씨는 위암을 발견했다. 조금도 남기지 않고 위 전체를 잘라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6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고 있는데 정상인보다 깨끗하게 나온단다. 문제는 김씨가 수술 이전과 똑같이 술·담배를 즐긴다는 점이다. 담배는 보통 한 갑 반에 술 마시면 두 세 갑, 술은 다른 사람만큼 마신다. 체중은 수술의 영향으로 64㎏에서 47㎏로 줄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김씨, 낯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술 담배를 그렇게 하면 안 좋은 거 아니냐고 묻자 “술, 담배야 모든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고 답한다. 시인에게 건강 상태는 왜 묻느냐는 투다. “의학면에 기사 쓰는 거냐”는 핀잔도 들었다.

 새 시집은 말하자면 이런 김씨의 인생관, 삶의 흔적 같은 게 고스란히 담긴 ‘문건’이다. 그런 면에서 실존적이다. 굳이 시집의 색깔을 뭉뚱그려 설명한다면 찬란한 옛사랑, 시 쓰기에서든 생활에서든 실패한 혁명을 아쉬워하는 고즈넉한 노래쯤 될까. ‘밀항(密航)’ ‘체 게바라에게’ 같은 제목의 시가 있는가 하면 시 제목이나 내용에서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뒷골목의 실내 포장마차 ‘은경이네’, 역시 신촌의 오래된 락카페인 ‘우드스탁’ 같은 곳을 김씨가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쉰내 진동하는 허름한 주점 한 구석을 찾아가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고음의 미성으로 뽑아내는 김씨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김씨는 “시는 모름지기 이전 시들과 다르거나 낯설어 새로운 정서를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노래라도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붉은 기호등』이 극단적인 실험시였다면 이번 시집은 노래에 해당된다. 물론 김씨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형식의 혁명이 되지 못하고 노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 실패한 시집을 왜 낸 거냐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물었다. ‘세속적 욕망 때문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의 말대로 김씨는 몸으로 시를 쓰는 중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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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문학세계사 기획이사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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