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시간 여행하던 두 노인, 택시와 함께 사라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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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도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다는 전남 순천 금둔사 홍매를 찾아 가는 길. 낙안읍성 지나 금둔사를 향해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차창 밖 버스 정류장에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두 노인을 발견했다.

 

횡재한 기분으로 차를 세우고 어르신들께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뭣해 몇 마디 말이라도 섞어볼 요량이었다. 그러나 어르신들은 차에서 황급히 내린 이방인이 오히려 더 낯설었는지 대답이 영 건성이었다. 몇 차례 말이 오갔지만 내가 알아낸 것은 “순천읍에 나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전부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았다.

 “찰칵, 찰칵.”

김성룡 기자

단 두 번 셔터를 눌렀는데, 뷰파인더 속 두 어르신이 길을 건너 내 쪽으로 오신다. 그리고 언제 와서 서 있었는지도 몰랐던 택시를 타고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산길에 홀로 남겨진 나. 살짝 볼을 꼬집어본다. 아프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는 두 어르신의 사진이 선명히 남아 있다. 꿈은 아닐 것이다. 만약 꿈이라면, 이 글을 마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난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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