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폐연료봉 파손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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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호기 폐연료봉(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를 보호하지 못하면 큰일 난다. 그것이 파손될 때 방출될 방사능 물질의 양과 그 폐해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백원필(50·사진) 원자력안전본부장은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사태 중에서도 가장 위급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백 본부장은 원전사고 시 냉각방안과 초대형사고(중대사고) 대처방안을 연구해 왔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해 가장 정확한 진단을 해 줄 수 있는 전문가로 꼽힌다. 그에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현황과 전망을 들었다.

-원전에서 냉각 시스템은 생명과 같은데 후쿠시마 원전의 비상작동체제가 허술했던 것인가.

 “후쿠시마 제1원전의 지진 대비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쓰나미에는 무력했다. 중요한 안전설비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방어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후쿠시마 원전 관계자들이 초기 진화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있다.

 “처음부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동원 가능한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투입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까지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로가 비상냉각 기능을 상실하자마자 곧바로 바닷물을 주입하는 등 ‘최후수단’까지 동원하기에는 절차상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중대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에서 중대사고에 대한 연구가 다른 연구 분야에 비해 활발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원자로와 폐연료봉 중 어느 것을 먼저 구해야 하나.

 “두 가지를 동시에 구하면 최상이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폐연료봉 저장수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특히 4호기의 폐연료봉 저장수조에서는 폐연료봉들이 장시간 공기에 노출돼 상당한 양이 손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조 건물 천장도 손상돼 있다. 여기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방출됐다. 주변 지역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높은 방사능 준위로 인해 작업자들이 다른 원자로에 접근하는 것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운전원이 머무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무슨 조치를 취할 수 있겠나. 물을 주입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반면 1·2·3호기 원자로의 경우에는 설령 원자로 내부에서 노심용융이 진행되고 격납용기가 손상됐다고 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의 대부분은 당분간 원자로용기 또는 격납용기 내부에 가둬 둘 수 있는 상황이다.”

-최악의 상황은.

 “1·2·3호기 원자로 내부의 노심용융은 그 하나하나가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원자로 안에 있는 막대한 방사성 물질의 일부만 외부로 방출되는 선에서 상황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4호기 폐연료봉 저장수조의 경우 적절한 대응에 실패한다면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것이다. 원자로가 폭발한 체르노빌 사고 수준까지는 안 되겠지만….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번 사태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원전이 얼마나 손상되고 얼마나 많은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에는 분명 엄청난 타격을 주겠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폐연료봉(사용후 핵연료)=이산화우라늄 분말을 도기로 구워낸 작은 실린더형 모양의 핵연료심(펠릿)을 금속관에 넣어 밀봉해 만든다.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 과정을 거친 뒤에는 핵연료봉을 꺼내 냉각수가 가득 찬 수조에 담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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