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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19) 아내를 가슴에 묻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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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외부 행사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과 고 박민엽 여사.


1957년 가을 나는 군을 갓 제대한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신혼이었다. 배움도 크지 않고 수중에 가진 것도 많지 않으니 그때 내 눈에는 세상이 온통 두렵고 불안하기만 했다.

그런 시기에 약국을 열기로 한 결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어찌 보면 무모한 것이었다. 나는 약대 출신도 아니었고, 자금도 군 장교 시절에 모은 돈으로 마련한 서울 돈암동 낡은 집 한 칸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아내는 나를 믿어줬다. 우리 부부의 전 재산인 집을 팔았고,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자칫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 끝에 종로5가 낡고 삐걱대는 목조 건물 16.5㎡(5평)에 엉성하게나마 가게를 꾸며 몇몇 약품을 들여와 진열하고, 약국 이름을 정하고, 허름한 간판을 맞춰다 걸고, 그리고 잘생긴 놈으로 소형 철제 금고도 하나 사서 놓았다. 그곳은 우리 부부의 신혼 침실이고 식당이고 삶의 기반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개업 전날 아내와 나는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선잠을 자고 눈을 뜬 새벽 아내는 몇 종류도 안 되는 약을 닦고 있었다. 그날 막걸리 한 주전자로 지내는 개업 고사에서 아내와 나는 어설프지만 진지한 제주(祭主)였다. 초조한 시간이 한참 흐르고 마침내 나와 아내는 첫 손님을 맞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90도 인사로 첫 손님을 맞았다. 나는 너무나 떨린 나머지 그때 그분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무슨 약을 사 갔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부부가 다시 90도 인사로 그분을 배웅하고 난 후 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듯한 기쁨을 누렸다.

 창업 전후가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인 만큼 그 시기를 함께 이겨낸 동지가 있다면 어찌 한순간도 잊을 수 있으랴. 유일한 창업 동지이자 든든한 동업자였던 이는 바로 아내였다. 약국 문을 연 후 아내는 매끼 밥을 해다 나르고, 약품을 진열하고, 장부 정리를 도왔다. 손님이 많아져 밥 두 숟가락을 연속으로 먹을 수 없을 때 손님을 보내고 다시 밥그릇 앞으로 오면 아내는 내 숟가락 위에 밥과 반찬을 얹어놓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6년 후 나는 보령제약을 설립해 제약업에 투신했다. 번듯한 공장을 세울 자금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공간은 역시 우리 집 마당이었다. 종로구 연지동 50여 평 집안에다 블록으로 어설프게 공장을 짓고, 최소한의 설비를 들여왔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하더라도 공장은 공장이었다. 온갖 소리를 내고 열기를 뿜는 기계들이 집 안에 들어섰으니 그때부터 우리 가족이 사는 모습이나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종업원들 뒷바라지하느라 이미 몇 사람 몫의 종업원이었고,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 어린 딸아이는 졸지에 집 마당 놀이터를 내주고 만 셈이었다.

 그 좁은 터가 곧 생산 공장이요 자재 창고였으니 우리 가족의 살림살이는 늘 뒷전이었다. 꽤 많은 비가 오면 천막이 시원치 않아 설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7~8명이 전부인 종업원과 함께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비나 눈이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때 집사람이 삶아 내오던 국수를 먹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어서 그 순간만큼은 설비가 멈추어 서 있는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국수를 끓여준 후 아내는 항상 보이지 않았다. 설비에 빗물이 닿을까 봐 혼자 비닐로 덮고 우산으로 비를 막고 선 것이다. 나는 속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종업원들에게 내 몫의 국수까지 나눠준 후 아내와 함께 우산을 들었다.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닥치거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 곁에는 항상 창업 동지가 있었고 그 동지는 때로는 말로, 때로는 말 없는 말로 나를 도와줬다. 그러나 아내는 2006년 늦가을 창립 50주년을 1년쯤 앞둔 어느 날 무심하게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더 참았다 비슷한 날에 나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갈 일이지 무에 그리 마음이 급했는지. 나는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아내의 묘를 찾는다. 아내가 우산을 들고 몇 시간씩 설비 곁에 섰듯이 나는 한참 동안 우산을 받쳐 묘를 지킨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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