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행복한 장의사

중앙일보

입력

영화 '꽃잎' 의 조연출 출신 장문일(36) 감독의 데뷔작 '행복한 장의사' 가 1월 8일 개봉한다.20대 데뷔감독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장감독의 데뷔는 상당히 늦은 편. 그러나 늦은만큼 영화는 여유가 있고 숙성돼 있어 오랜만에 진국을 맛보는 느낌이다.

'장의사가 행복하다' 는 역설적인 제목이 상징하듯 영화는 코미디를 지향한다.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는 경쾌한 이야기 설정과 배우들의 감초같은 희극성은 무겁고 어두운 '죽음' 이란 소재의 한계를 간단히 뛰어 넘는다.

무대는 전라도의 어느 작은 읍내에 있는 '낙천장의사' . 장의사를 필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장판돌 노인(오현경)을 비롯, 장의사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손자 재현(임창정)과 하는 일마다 실패를 맛본 끝에 '낙천장의사' 에 취업해 장례 비즈니스를 꿈꾸는 판철구(김창완), 다방여종원에게 마음을 뺏긴 이웃 슈퍼집 아들 대식(정은표) 등이 등장한다.

영화는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이들이 10년째 한사람도 죽지 않은 시골마을 장의사를 꾸려가며 겪는 일상을 그린다.여전히 탈출을 꿈꾸는 재현이나 떼돈을 벌 수 있게 줄초상 나기를 기다리는 철구, 몸을 실컷 만질 수 있게 처녀가 죽기를 기대하는 대식 등. 평범한 사람들의 동상이몽이 서로 얽혀 진행된다.

그러나 죽음을 다뤘다해서 이 영화는 결코 어둡거나 침울하지 않다.오히려 자연색을 충분히 담아낸 스크린에서는 내내 건강한 생명력과 싱싱함이 넘쳐난다.장난기가 지나치다 할만큼 가끔 썰렁한 농담이 난무하지만 상황에 알맞게 끼어드는 맛이 괜찮다.이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 특히 재현의 태도에서 그게 두드러진다.시체만 보면 구역질을 해대던 재현은 자신을 사랑하던 꽃집 과부 소화(최강희)가 죽자 직접 염(殮)을 하며 진정한 장의사로 거듭난다.

장감독은 일상에서 오는 다양한 웃음에서 묵직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데 남 다른 재주를 보여 준다. 그는 "결코 죽음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며 "장의사라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아파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 라고 결론지었다.이 영화는 '잃어버린 것' 에 대한 그리움도 잔뜩 담았다.노인에 대한 공경심도 그렇고, 도회적 분위기를 극구 배제한 채 자연 그대로의 산과 들, 비와 바람, 꽃과 향기 등을 화면 가득히 채워 관객들을 아련한 추억속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걱정거리도 없지 않다.눈에 띄는 스타가 없는데다 '아름답고 따스한 영화' 에 대한 우리 관객들의 이상한 냉소주의가 자칫 흥행면에서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코믹 일변도인 전반부와 진지함이 넘치는 후반부의 불균형이 거슬리긴 하지만 오랜만에 죽음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수준 높은 작품" 이라고 평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