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총리 “원전 철수는 없다, 각오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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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총리가 15일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그는 “더 이상의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도쿄전력) 당신들밖에 없다. 철수는 있을 수 없다. 각오해 달라. (후쿠시마 원전에서) 철수하는 순간 도쿄전력은 100% 박살날 것이다. TV에서 ( 원전 폭발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데 총리 관저에는 1시간 정도 연락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원전 상태가) 호전되는 상황이 아니다. 낙관할 수 없다.”

후쿠시마(福島) 원자력 발전소에서 잇따른 폭발 소식이 전해진 15일.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하루는 ‘비상(非常)’의 연속이었다.

 새벽 5시30분 간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대책 통합연락본부’의 출범을 직접 발표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내가 진두지휘해 내겠다”고 선언한 뒤 곧바로 본부가 설치되는 도쿄 우치사이초(內幸町)의 도쿄전력 본사 2층으로 향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회사다. 정부 각료들과 도쿄전력 임원들이 참석한 대책회의에서 간 총리는 “(도쿄전력이)후쿠시마 원전에서 철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당신들밖에 없다. 철수란 있을 수 없다. 각오를 단단히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지지(時事)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간 총리는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서)철수하는 순간 도쿄전력은 100% 박살날 것(망한다는 의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이) TV에서 방영되고 있는데 총리 관저에는 1시간 정도 연락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불쾌감까지 토로했다고 한다.

간 총리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동안 도쿄전력이 낙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해 왔다는 불신감에서였다. 대책회의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통합 연락본부장은 간 총리가 직접 맡았고, 부본부장은 가이에다 반리(海江田萬里) 경제산업상과 시미즈 마사다카(清水正孝) 도쿄전력 사장이 맡았다. 가이에다 경제산업상과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총리 보좌관은 아예 본부가 설치된 도쿄 우치사이초(內幸町)의 도쿄전력 본사에 상주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날 간 총리가 도쿄전력을 찾아 강도 높은 발언을 하자 야당인 자민당의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간사장은 “민간기업에 총리가 가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간 총리로선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도쿄전력을 나서는 간 총리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된 상태였다. 총리 관저로 돌아올 때 “피난 범위를 넓힐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입술을 꼭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간 총리는 TV카메라 앞에 섰다.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작업복 차림의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그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시도했으나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3호기에서 수소가 발생해 폭발했고, 4호기도 화재가 발생해 방사능 농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런 뒤 침통한 표정으로 “방사능 물질의 누출 위험이 커졌다”며 “후쿠시마 원전에서 20㎞ 범위는 모두 피난했지만 이 범위 밖에서도 최대한 피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20~30㎞의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고) 실내에 대기하라”고도 당부했다.

 대국민 담화는 호소조로 마무리됐다. 간 총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 이상의 누출 확대를 막도록 전력을 다해 나가겠다. 국민 모두께선 걱정이 크시겠지만 제발 냉정하게 대처해 주시길 마음으로부터 부탁드린다. 국민에 대한 나의 부탁이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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