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들고 온 쉰넷의 디바 “죽을 때까지 화려한 가수로 남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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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33년째를 맞이한 가수 인순이. 힙합 음악으로 돌아온 쉰넷의 디바는 “댄스 연습은 죽어라 하는 스타일이다. 새로운 안무를 맞출 때는 잠 자는 시간만 빼고 연습한다”고 했다. [김태성 기자]


가수 인순이(54)가 춤꾼이란 사실은 흘겨 알기 쉽다. 그건 그가 타고 난 노래꾼이기 때문이다. 그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자주 그의 아름다운 몸짓을 압도한다. 하지만 주의하자. 그는 “춤이란 몸짓으로 표현되는 음악”이라 생각하는 뮤지션이다. 그러니까 노래와 춤이 맞물릴 때라야 인순이의 음악 세계가 비로소 완성된다.

#춤은 몸짓으로 하는 음악

 그런 그가 힙합 음악을 들고 돌아왔다. 최근 힙합듀오 슈프림팀과 디지털 싱글 ‘어퍼컷’을 발매했다. 강렬한 랩과 비트감이 요즘 아이돌 음악을 닮았다. 소녀시대의 ‘지(gee)’를 작곡한 이트라이브가 곡을 썼다.

 올해 나이 쉰넷. 그러나 그는 거침 없다. 붉은 무대 의상을 입고 골반을 하느작하느작 흔들며 노래한다. 흡사 팝스타 마돈나의 무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마돈나는 그보다 한 살 아래다.

 “마돈나가 지금까지 춤춘다고 누가 뭐라고 합니까.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죽을 때까지 화려한 여가수로 남고 싶어요. 지금처럼 노래가 원하는 패션이면 당당히 입고, 노래가 원하는 춤이면 얼마든지 신나게 흔들면서….”

 그러고 보면 인순이는 전천후다. 애초에 장르의 벽이란 게 없다. 1978년 댄스그룹 희자매로 데뷔해 83년 디스코 곡 ‘밤이면 밤마다’로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늘 다양한 곡을 자신만의 색깔로 소화했다. 랩퍼 조PD와 ‘친구여’를 부를 때도, 후배들의 기성 곡(카니발의 ‘거위의 꿈’ 등)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낼 때도 그랬다.

 “기본기 없이 노래에 멋부터 부리면 절대 오래 갈 수 없어요. 저는 스탠더드 음악부터 차근차근 익혀가며 노래라는 성을 쌓았어요. 노래라는 게 꼭 시와 같거든요. 시처럼 여백이 있어야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죠.” 이를테면 탄탄한 기본기를 다진 그는 노래를 따라 여유롭게 휘어진다. 마치 뿌리가 단단한 나무가 바람을 따라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인순이는 어떤 노래가 주어지더라도 그 노래에 자신의 목소리를 착 감아낸다.

 “어떤 곡이든 작곡가에게 나를 이끌어달라고 먼저 부탁해요. 제가 선배랍시고 작곡가가 자신의 의견을 펼치지 못하면 저 또한 발전이 없으니까요. 어떤 지적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트렌드에 민감한 곡들도 잘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폭발적인 라이브 실력

 그의 음악 인생이 늘 탄탄했던 건 아니다. 6~7년 정도 사나운 세월을 그저 견딘 적도 있다. 80년대가 기울 무렵 “대중이 눈을 돌렸단 걸 절감했다”고 한다. 방송 무대가 점차 사라지자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공연을 펼치며 재기를 꿈꿨단다.

 “크고 작은 콘서트를 하면서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죠. 꼬마들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팬을 만나면서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노래 장르가 확 넓어졌어요. 슬럼프가 오히려 기회였던 셈이죠.”

 잠시 웅크렸던 그가 다시 뛰어오른 건 1993년 KBS ‘열린 음악회’에서다. 수년 만에 움켜쥔 출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맨 마지막 순서에 두 곡을 불렀는데, 예기치 않은 앙코르 박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무반주로 앙코르를 두 곡이나 부르고 나서야 무대에서 내려왔다. 전국을 돌며 쌓았던 라이브 내공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10여 년간 ‘열린 음악회’에 단골 출연했다.

 “저는 확실히 라이브형 가수인 것 같아요. 방송 무대에서도 콘서트 하듯 관객 눈을 맞추면서 노래를 하거든요. 시청자들도 마치 공연 현장에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설이 되고픈 전설

 사실 인순이의 노래는 깊은 밤에 들어야 제 격이다. 또렷한 한국어로 들려오는 노랫말 때문이다. 혼혈이란 이유로 고통스런 성장기를 보냈던 그의 온갖 사연이 그 노랫말에 실려 오는 것 같다. 그가 “난 꿈이 있어요.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거위의 꿈’)라고 노래할 때는, 차라리 우리 이야기를 그의 노래가 들어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가사를 잘근잘근 씹어서 부르는 편이에요. 노래는 메시지라고 믿기 때문이죠. 노래에 실려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기쁘게도 하고 눈물 짓게도 하죠. 노래란 음악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요.”

 노래란 확실히 과거의 언어다. 추억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올해로 데뷔 33년째를 맞이한 인순이는 그 추억을 가장 예민하게 불러내는 가수 가운데 하나다. 그는 “노래를 통해 옛 시절을 떠올리고 숨죽여 흐느낄 수 있다면 그게 노래의 힘”이라고 했다. 세 해 전 그의 30주년 기념 콘서트의 타이틀은 ‘인순이는 전설이다’였다. 그는 “전설이 되고 싶다는 게 그 타이틀의 숨겨진 뜻”이라고 했다.

 그의 겸양은 두터웠지만, 우리는 안다. “갈수록 무대가 두려워진다”는 그는 우리 대중음악사가 기억할 몇 안 되는 전설로 남을 게다. 인순이는 5월 7~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더 판타지아’ 콘서트를 연다. 1544-1555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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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가수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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