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박인상 한노총 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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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노동계의 최대 현안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라고 봅니다. 2002년 1월부터 시행예정인 사항이 갑자기 불거진 이유는 뭡니까.

"이 문제는 96년말 노동법 파동 때 한나라당의 날치기통과 이후 지금까지 2년이나 끌어온 사안입니다. 당시 노사가 합의한 사항도 아니었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문제해결을 공약했던 사항입니다. 지난 6월에도 정부가 연내 해결을 다시 약속했고요. 현재 노동자들 사이에 정부에 대한 불신풍조가 만연돼 있습니다. 새 천년을 맞기 전에 반드시 이런 주요 현안들은 정리돼야 합니다."

- 노사정위원회가 마련한 중재안을 받아들일 용의는 있으십니까.

"중재안이란 게 전임자 임금지급의 자율성을 보장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처벌조항이 삭제됐다고 하지만 이 조항은 처음부터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실효성도 없는 사문화된 조항들입니다. 재계가 '무노동 무임금' 을 주장하지만 이는 파업할 때 적용할 수 있지요.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 따라 노사의 자율성에 맡겨두자는 것이 우리의 뜻입니다. "

-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인지요.

"이미 밝힌 대로 17일 경고파업을 하고, 23일에는 총력파업에 들어갑니다.
정부를 믿을 수 없으니 별 도리가 있겠습니까. 우선은 내년 총선 때까지 연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

- 노사정위에 복귀할 생각은.

"IMF 위기 속에 노동자를 도와준 게 뭐 있습니까. 구조조정은 계속하면서 합의사항이 이행이 안되는 상황에서 (노사정위에) 더 이상 무슨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전임자 문제를 제기하자 '전' 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기구가 과연 사회적 협약기구인지 회의가 듭니다. 노조전임자 문제 등 현안이 해결된다 해도 지금으로선 복귀할 계획이 없습니다. "

- 재계가 느닷없이 정치활동 선언을 하고 나선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국회에서 전임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자 이에 쐐기를 박기 위한 협박과 공갈입니다.
재계가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안 한 적이 있습니까. 아예 이번에 정경유착을 노골적으로 공개 선언한 거죠. "

- 노동계가 정치활동을 하겠다고 하면서 재계라고 못하란 법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자신들의 개인 주머니에서 도와주는 거야 상관할 바 아닙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벌어들인 이익금을 정치자금으로 내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지요. 돈 얘기만 나오면 기업의 이익이 나느니 안나느니 호들갑을 떨면서 무슨 정치자금을 낼 여력이 있다는 겁니까. "

- 재계가 굳이 내년 총선에 적극 참여한다면 어쩔 생각입니까.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요. 헌법재판소가 노조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한 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만큼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돈을 모아 친노동자적 후보를 지원할 생각입니다.
그런 정치판이 사용자에게 유리할지의 여부는 사용자가 냉정히 판단해야 할 겁니다. "

- 내년 총선에 앞서 특정 정당과 정책제휴를 통해 총선에 참여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적극 검토 중입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정책과 사회복지정책을 펴고,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2년중임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정당을 지지할 겁니다. 조합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2월께 공식 선언할 예정입니다. "

-민주노총에 비해 '친정부적' 이고 온건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우리와 약속한 정책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비판하고 응징할 수밖에 없습니다. "

-민주노총이 합법화되면서 한국노총이 그동안 누려왔던 기득권에 대한 위기의식과 경쟁심이 없지 않을 텐데요.

"민주노총이 실제로는 합법적인 단체와 마찬가지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나 정책적으로 같은 사안은 힘을 모아 밀어붙이고 소소한 문제로 서로 싸우지 말자고 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사무총장끼리 만나 큰 틀에서 정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金대통령이 누구보다 노동문제를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접하면서 정부가 아직도 공작적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다는데 놀랐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노동자에게 짐을 지워주는 방식으로 밀어붙이면 안되지요. 거리를 헤매고 있는 노동자와 서민의 아픔을 아우를 수 있는 정책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제 힘이 닫는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위해 운동한 뒤 조용히 물러날 생각입니다. 신당에서 영입제의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

- 내년 봄 노사관계에 대한 전망은.

"어려운 관계가 계속되겠지요.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다지만 바닥에선 계약직과 파트타임 등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반납하고 참아왔던 임금문제, 더욱 벌어진 빈부격차 등에 대한 보상심리가 커지고 있어 투쟁강도가 더 거세질 겁니다. "

- 이번 농성은 언제까지 계속할 작정이십니까.

"새 천년을 여기서 맞이하려고 합니다. 처음엔 국민회의 권한대행을 만나 노정(勞政)간 합의사항에 대해 당의 답변을 듣고 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참고하겠다' 는 말만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확실히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해 눌러앉아 있는 겁니다. "

<약력>
▶39년 경남 사천생
▶삼천포 남양중.부산 대한조선공사고교
▶59년 대한조선공사 입사
▶81년 전국금속노련 부위원장
▶88년 전국금속노련 위원장(96년까지 3선)
▶96년 한국노총 위원장 당선
▶99년 노총 위원장 재선
▶90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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