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무라야마 실패’ 학습 효과 … 간 총리, 헬기 타고 진두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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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자위대 헬기를 타고 쓰나미 피해를 본 미야기현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미야기현 AFP=연합뉴스]

자위대 헬기 필사의 구조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시에서 12일 자위대 소속 헬리콥터가 건물 옥상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다. 자위대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후 간 나오토 총리의 지시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리쿠젠타카타 AP=연합뉴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의 ‘지진 복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각종 악재에 시달리던 그는 최근 재일 한국인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그에게 롱런을 보장하는 기회일 수도, 총리직을 던져야 하는 위기일 수도 있다. 그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 그는 지진 발생 직후 발족시킨 긴급재해대책본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진 발생 당일인 11일엔 한 시간 반 만에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했고, 2시간10분 만에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침착하게 행동해 달라”고 호소했다.

인명 구조활동을 위한 자위대 파견 방침을 곧바로 발표했고, 자위대 파견 규모를 13일 전체 병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10만 명으로 늘렸다. 그는 미군에도 지원을 요청했고, 미국은 항공모함을 포함한 태평양함대 소속 함정 6척을 일본에 급파했다. 간 총리는 12일엔 자위대 헬기 편으로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피해 지역을 4시간 동안 직접 둘러보는 ‘현장 스킨십’도 보여줬다.

 점퍼 차림으로 13일 밤 기자회견에 나선 간 총리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며 “일본이 이번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빠른 간 총리의 대처법은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 당시 무라야마 정권의 실패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의 어설픈 대응은 96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조기 사퇴에 영향을 미쳤다. 지진 발생 보고에 한 시간 가까이 걸렸고, 자위대가 구호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지진 발생 후 사흘째였다. 훗날 무라야마가 “조금만 대처가 빨랐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할 정도였다.

 간 총리의 대처는 16년 전에 비해 기민해 보이지만, 일 언론의 반응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되레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건의 발표가 늦었다며 정부를 질책하고 있다. 향후 관건은 지진 피해를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다.

서승욱 기자

◆고베(神戸) 대지진=1995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고베시를 비롯한 한신(阪神)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규모 7.2의 지진. 고베시의 피해가 가장 커 ‘고베 대지진’으로 불린다. 사망 6300여 명, 부상 2만6804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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