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16) 직원 나이 기억하는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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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1979년부터 매달 열리고 있는 생일자 조찬회 모습.

우리 회사는 1979년 1월부터 한 달도 빠짐없이 생일조찬회를 열어 왔다. 매월 셋째 주 월요일 아침 본사 식당에서는 그달 생일을 맞는 임직원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열고 미역국과 케이크 등 생일 음식을 나누면서 맥주도 한두 잔씩 함께 한다. 축하를 위해 참석한 임직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그렇게 사원들의 생일 모임에 참석한 것이 30년을 넘었다. 나는 외국 출장과 같은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모임에 빠진 적이 없다. 심지어 그 모임이 있는 날을 피해 출장을 가기도 했다. 제때 출장을 가지 않아서 생기는 손실보다 그 모임에 빠져서 생기는 손실이 더 크다는 생각에서다. 어떤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생일파티 하는 게 무슨 큰 문화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기업도 생일을 맞은 사원을 매달 챙기고, 그 일을 30년 가까이 해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나를 포함한 임원진 모두 참석한 자리를 통해서 말이다.

 생일조찬회가 있는 날의 주인공은 물론 생일을 맞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날은 보령가족 모두가 그 사람의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어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낸다. 그러므로 보령제약그룹은 한 달에 한 번 온 회사가 잔치를 맞은 것처럼 설레게 된다. 생일 축하를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이유는 미역국이나 케이크를 대접받아서가 아니다. 회사 전체가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고 있으며, 그래서 자신이 보령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그 존재를 인정받을 때 가장 기쁜 법이다. 보령제약의 30년 문화인 생일조찬회는 모든 사원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나아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소중한 문화다.

 지금은 직원 수가 수천 명에 이르고 내 나이도 여든이나 되니 어려운 일이지만 예전에는 직원의 얼굴을 대부분 다 기억했었다. 심지어 생일조찬회에 참석한 직원들에게 “이 부장이 마흔둘 되었지?” “자네는 서른인데 장가 안 가나?”라고 먼저 묻곤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최근에는 생일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같이 보며 생일파티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 관람 후 생일을 맞은 임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둘째 줄 왼쪽에서 넷째).



 전체 직원 수가 600명쯤 되었을 때니까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한 번은 생일조찬회를 하는데, 분명 6개월 전에 생일잔치를 해주었던 한 과장이 또 생일상을 받기 위해 앉아 있었다. 그를 포함해 생일을 맞은 직원은 모두 열아홉 명이었다. 나는 한 명 한 명에게 축하의 말과 선물을 건넸는데, 마지막에 앉아 있던 과장에게는 축하의 말과 선물 대신 질문을 했다. “김 과장은 일 년에 생일이 두 번이야?”

 그러자 장내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그때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큰딸 김은선 사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런데 김 사장도 한참을 웃기만 하더니 겨우 대답했다. “죄송해요, 회장님. 직원들이 회장님을 테스트해 본 거랍니다.”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았다. 내가 과연 그 많은 직원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자기들끼리 짜고 한 일이었다. 6개월 전에 생일잔치를 했던 직원을 다시 생일잔치 주인공으로 앉혀 놓고 내가 기억하는지 못 하는지 본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직원들에게 거의 정확히 나이까지 맞추어 생일 축하를 하고, 심지어 집안 어른이 회갑을 맞은 해이거나 고희를 맞은 해인 것까지 기억해 축하를 전하던 나였다. 그런 나도 12월에 생일조찬회 주인공이 되어 다른 직원들과 함께 생일상을 받았다. 때마침 미국에서 우리 회사를 방문한 손님들이 있어 그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그들은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보고 매우 놀라는 눈치였고, 연방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미스터 김, 하우 올드 아 유(How old are you)?”

 그런데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막상 내가 몇 회 생일을 맞았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내 생일은 잊어도 직원들 생일은 잊지 않는 경영자, 내 나이는 잊어도 직원들 나이는 잊지 않는 경영자인 것이 오히려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이번 달 생일조찬회는 셋째 주 월요일인 3월 14일, 바로 오늘이다. 나는 지금 보령제약 주인들인 우리 소중한 직원들 생일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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