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2㎞ 수영, 주말엔 4시간 산행… 하루만 걸러도 일손 안 잡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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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호 20면

중앙SUNDAY 강남규 기자가 서울 태릉의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운동부하검사를 하고 있다.그는 운동중독 증세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최정동 기자

운동의 세계에서 나는 ‘늦게 배운 도둑’이다. 마흔이 다 됐을 때 운동을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은 요즘 날 새는 줄 모른다. 뒤늦게 시작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운동에 몰입하고 있다.
주종목은 수영이다. 오전 6시 집 근처 수영장에 출근한다. 10분 정도 준비운동을 마친 뒤 물에 뛰어든다. 느긋한 물질은 내겐 죄악이다. 가열하게 팔을 돌리고 물을 찬다. 접영→배영→평영→자유영 순으로 이어지는 200m짜리 개인혼영을 50분 동안 10세트는 해야 한다. 전체 거리는 2㎞ 남짓이다. 어림잡아 한강을 헤엄쳐 왕복하는 거리다. 이를 다 마친 뒤에야 ‘운동 좀 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서야 이른바 운동 만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6일 동안 이런 식이다.

운동중독, 중앙SUNDAY 강남규 기자의 경우

일요일엔 나는 좀 다른 운동에 빠진다. 등산이다. 암벽이나 빙벽을 타는 쪽은 아니다. 산악 트레킹이다. 일요일 오전 8시에 시작해 낮 12시쯤 등산을 끝낸다. 4시간 정도 골과 능선을 걷고 봉우리를 넘나든다. 서울 근교 산만 가는 게 아니다. 매달 2회 정도는 동호회를 따라 무박 산행을 한다. 오전 3~4시에 산을 타기 시작해 10시간 정도 내달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폐가 파열할 듯한 순간 희열이 몰려든다. 땀으로 내 모든 진액이 빠져나간 듯하다. 이 느낌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동호회원들과 아침이나 점심을 함께 먹는 시간도 최대한 줄인다. 쉬는 동안 맥박이 떨어지고 호흡이 느려지면 운동 쾌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내 “내 연적은 산과 수영장”
나 스스로 “운동을 신으로 영접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하곤 한다. 독실한 신자들이 느끼는 종교적 희열 등을 나는 운동을 통해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도 했다. 운동과 식사 조절을 해서 체중을 많이 줄였다. 94㎏대에서 68㎏대로 26㎏을 줄였다. 요요현상 없이 줄어든 체중을 3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운동을 신으로 영접하기 전보다 직장 일을 좀 더 적극적이고 빠르게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체력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묘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도 했다.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것도 있다고 했다. 적잖은 부작용이 발생한다. 팔과 등, 허벅지, 종아리 근육통은 늘 달고 다닌다. 문제는 근육통을 받아들이는 내 자세다. 나는 뻐근하고 욱신거리는 느낌을 증명서처럼 여긴다. 그 느낌이 없으면 ‘내가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걸까’ 하는 식으로 의심한다. 또 등산할 때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 결과 올 2월 초 덕유산 등산 도중 해가 떨어져 조난을 당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구조대가 없었다면 눈 속을 헤매다 탈진해 얼어죽을 수도 있었다.어쩌다 운동을 거를 때가 있다. 일과 운동의 피로가 누적돼 수영장에 가야 할 시간을 놓친 경우다. 이런 날은 식욕이 떨어진다.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 준비물을 빼먹고 학교 갔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몰려든다. 이런 기분을 떨치기 위해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회사 계단을 오르기라도 해야 한다.

운동을 이틀 정도 거르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더 오래 남는다. 제대로 운동했을 땐 그저 웃어넘기곤 하던 여유가 없어져서다. 직장 일 자체가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기분을 떨치기 위해 나는 운동에 더욱 매달린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가족의 불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내는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며 등산 장비를 챙기는 남편 때문에 느긋하게 늦잠을 즐길 수 없다고 불만이다. 그는 “가족·친구 모임보다 운동을 중시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아내인 나마저도 우선순위에서 밀린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내 남편은 운동이란 여자와 바람났다. 내 연적(戀敵)은 수영장과 산”이라고 푸념하곤 한다.

전문가 “상당한 운동중독 상태”
아내가 불만을 얘기하면 나는 “운동하지 않아 돼지 같고 성인병 달고 사는 남자하고 살라면 좋겠어?”라고 반문했다. 순간 아내의 볼멘소리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불만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 아내는 다시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내겐 상당한 부담이었다.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내 몸 상태를 점검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체력을 측정해 분석하는 체육과학연구원에서 3월 2일 운동부하검사를 받았다. 가열하게(?) 유산소운동을 한 덕분에 심폐기능은 40대 성인을 기준으로 상위 1%에 들었다. 체지방 비중은 운동선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낮아져 있었다. 등산으로 단련된 덕인지 하체 근력도 상위 5%에 드는 수준이었다. 전반적인 근력은 평균 수준이었다.

검사 결과를 보고 나는 뿌듯했다. 30년 가까이 고도비만으로 살아온 과거가 떠올랐다. 2007년 2월 건강진단에서 심각한 지방간 판정이 나오기까지 나는 운동과 담쌓고 지냈다. 1980년대 대학입시의 체력검정 시험에서 18점을 받았다. 당시 응시자 80% 이상이 20점 만점이었다. 그때 내 체력은 지진아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또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내 신념은 귀차니즘”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귀찮은 느낌이 들면 모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생활 태도다. 이런 과거에 비춰 현재 나는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옮겨간 셈이다.

그런데 운동부하검사에 따른 성취감은 잠시였다. 또 다른 테스트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상당한 운동중독으로 나왔다. 2009년도에 개발된 한국형 운동중독 판정기준에 따르면 체크한 항목의 합계가 63점 이상이면 중독이다. 내 점수는 72점이었다.고려대 안암병원 스포츠의학센터장 이순혁 교수는 “강남규씨는 근육이나 관절 파손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지 운동 의존도(중독)가 상당히 높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운동중독의 심리상태는 외도나 종교적 광신과 거의 같다”고 설명했다. 중독자 자신은 희열과 성취감 등을 느끼지만 배우자 등 가족은 박탈감이나 소외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진단에 이어 엄중한 경고가 뒤따랐다. 이 교수는 “운동을 하면 건강해져 장수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단명한다”며 “장수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운동을 지나치게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몸을 적당히 사용하면 약이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운동이 아니라 혹사 상태에 진입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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