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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판·검사 잡겠다며 고위 공직자는 왜 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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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초 우리 사회는 ‘이념 편향 판결’로 홍역을 치렀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공중 부양’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등 민감한 사안에서 나온 무죄 선고가 촉발했다. 국민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은 ‘기교(技巧) 사법’ ‘사법 정치’라는 역풍을 불러왔다. 이어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지고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고질적인 폐해까지 겹치면서 사법개혁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 어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발표한 법조개혁안은 그런 기대 속에 나온 첫 작품이다. 개혁안은 판·검사 퇴직 후 1년간 ‘근무지 수임’ 금지, 검찰시민위원회 설치, 법조일원화(法曹一元化) 등 평가할 만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특히 특별수사청 설치가 그렇다. 수사 대상을 판·검사와 검찰수사관으로 한정한 것부터 문제다. 최근 불거진 향판(鄕判)의 전횡과 ‘그랜저 검사’ 등 판·검사 개인 비리가 종종 있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1년에 몇 건 안 되는 사건을 위해 상설기구를 두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현실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가 더 만연한 세상이다. 판·검사를 잡겠다면서 고위 공직자를 뺀 이유가 궁금하다.

 또한 특별수사청이 ‘국회 의결로 의뢰한 사건’을 맡도록 한 것은 삼권분립에 어긋난다. 국회는 검찰의 ‘청목회 후원금 수사’를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비리에 대한 수사를 ‘수사권 남용’이라고 몰아붙여 고발한 뒤 ‘수사 의뢰’ 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국회가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굳이 특별수사청을 만들겠다면 국회의원과 고위 공직자를 반드시 포함시키고, ‘국회 수사 의뢰’는 삭제하는 게 타당하다.

 중수부 폐지는 동전의 양면이다. ‘하명(下命) 사건’ 등 검찰의 정치화를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된다. 하지만 안대희 대법관이 중수부장 시절 지휘했던 대선자금 수사처럼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데는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양형(量刑)기준법을 만들기로 한 점도 눈에 뛴다. 현재의 양형기준은 권고에 불과하다. 전관예우나 고무줄 판결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면 양형기준의 법제화는 적극 검토할 만하다. 다만 양형위원회가 대법원 소속일 경우 판사의 재량권 축소를 꺼리는 법원의 영향력이 미칠 우려가 있다. 독립기구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개혁안에 대해 법원은 숫자가 많아지면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법관 증원에, 검찰은 특별수사청 신설에, 변호사는 1년간 수임 금지에 반발한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부정하는 ‘경찰의 수사 개시권’과 ‘경찰의 복종의무’ 폐지도 강력한 휘발성을 담고 있다. 개혁안은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확정된 뒤 4월 말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너무 서둔다는 느낌이다. ‘빨리’도 좋지만 국민의 인권이 달려 있는 만큼 신중함이 중요하다.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해 당사자의 로비와 압력에 밀려 개혁안이 누더기가 되거나 개악돼선 곤란하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