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스티브 잡스식 프레젠테이션 최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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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최근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의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섰다. 아이패드2라는 신제품보다 스티브 잡스의 귀환이 더 화제다. 애플에 관한 수많은 책 중 상당수는 잡스의 프레젠테이션만을 다루고 있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방식은 업종을 불문하고 최고경영자들의 프레젠테이션 전형으로 이미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런데 잡스 식의 프레젠테이션이 과연 최선일까.

 1990년대 초 광고계 최대 화제였던 대형 경합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시켜 광고를 따낸 발표자 3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첫 번째 발표자는 건조하지만 속삭이듯 그러나 정확한 발음으로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장 상황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었으니 차분함이 효과가 있었다. 이어진 발표자는 약간의 사투리 억양을 섞어 만담 조로 프레젠테이션을 이끌어 갔다. 바로 앞의 절제된 분위기에 뭔가 답답함을 느꼈을 청중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큰 모션과 연극적인 제스처, 힘 있는 목소리의 발표자가 세 번째로 나서 장식했다. 광고 외에 매출과 바로 연결될 프로모션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면서 포효하는 듯한 목소리, 연극적인 제스처와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며 80분에 걸친 프레젠테이션의 대미를 장식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감동한 광고주는 그 자리에서 바로 3명의 손을 들어 줬다. 발표자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앙상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최근 그 전설적인 프레젠테이션의 중간발표자로 나섰던 선배를 만나 회고담을 들었다. 그 선배가 강조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였다. ‘우선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라. 둘째, 청중의 눈높이에 맞춘 용어를 쓰고 분위기를 만들어라. 셋째,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지켜가라’.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때 몇몇 광고회사에는 광고 수주 때 프레젠테이션을 도맡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사람과 광고를 따낸 뒤 실제 그 광고주를 담당하는 사람이 달라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야말로 프레젠테이션 기술만을 내세운, 진실성에서 문제가 되는 행위다. 이런 방식은 내용을 발표자가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못해 조금만 깊이 있는 질문이 나와도 제대로 대처가 되지 않는 위험한 것이다. 이제는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저서인 『시간의 역사』 서문에서 친구가 해준 충고를 털어놨다. “공식 하나를 쓸 때마다 판매부수는 절반으로 줄 것”이란 충고다. 그래서인지 그 책에는 ‘E=MC²’이란 단 하나의 공식만이 나와 있다. 이처럼 프레젠테이션에서도 회사 내부에서 동료들과 쓰는 약어나 업계의 전문용어들이 나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자면 철저한 사전 연습과 리허설이 필요하다.

 좋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이미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 등에 맞춰 자기만의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유행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고 했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방식은 그에게는 스타일이지만, 따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유행일 뿐이다. 유행은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참조할 대상이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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