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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호회 好好 정향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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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붓을 바로 잡고 한지 위에 곧게 뻗은 대나무를 그린다. 전통찻집에 모여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는 ‘정향정’ 회원들 모습이다. 평범한 주부들이지만 자세만큼은 프로 못지않은 회원들을 만나봤다.

삶을 즐기는 주부들의 모임

 “두 번째 대나무는 첫 번째 것보다 얇게 그리셔야죠. 붓은 위를 잡아서 반듯이 세우시고 .”책상 앞에 놓인 한지 위에 붓이 움직이자 곧은 대나무가 모양을 드러낸다. 정향정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전통찻집 ‘겨자씨’에 모여 문인화와 서예를 배운다. 문인화 모임은 수요일 오전 10시, 서예는 목요일 오전 10시에 열리며 회원은 8명이다.

 “분위기 괜찮은 찻집이 있단 얘기를 듣고 우연히 들렀다가 동호회 활동까지 하게 됐죠.” 신춘희(52·강서구 염창동)씨의 얘기다. 우아하고 깔끔한 찻집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데 문인화 무료 강습까지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서예 모임에 참여하는 신씨는 “자세에 따라 글씨 모양이 달라진다”며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해서 글씨를 쓰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씨를 쓸 때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것이 신씨의 귀띔이다.

 문인화 회원인 김미현(59·강서구 등촌동)씨는 개인 사업을 하느라 늘 바쁘지만 모임에 빠지는 일이 없다. “아예 수요일 오전은 ‘나를 위해 비워두는 날’로 정했다”는 김씨는 “섬세하지 않은 듯한 선 하나에 모든 것이 담기는 게 문인화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일에 쫓겨 지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일상에 활력도 생겼다.

 문인화를 가르치는 사람은 겨자씨 주인장인 이윤정(53)씨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개인아카데미를 여는 게 오랜 꿈이었다”는 이씨는 경력도 다채롭다.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15년 동안 교단에 섰고 문화센터에서 노래강사로도 활동했다. 서예·문인화가 모임인 대한주부클럽 묵향회 회장도 지냈다.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이웃들과 다양한 취미생활을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든 게 바로 ‘정향정’이다.
 

회원들의 사랑방 전통 찻집 겨자씨

 모임은 지난해 9월 초부터 시작됐다. 겨자씨가 문을 연 지 한 달 정도 뒤다. ‘맑은 향기가 머문다’는 뜻을 담아 동호회 이름을 지었다. 모임이 있는 날엔 은은한 우리 차 향에 묵향이 더해진다. 회원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다 보니 회원들에게 인사차 일부러 찻집에 들르는 주민들도 있다. 마치 동네 사랑방 같다. 모임이 없는 날엔 여느 전통찻집 모습 그대로다.

 “겨자씨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요즘 젊은이들을 위한 카페는 많아도 중년층이 차 한 잔 느긋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죠.”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주인장 성격 덕분에 실제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차 한 잔 하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고 평한다.

 어떤 손님은 3000원짜리 차를 마시고 1만원을 놓고 간 적도 있다.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따뜻한 대접까지 받았으니, 내가 마신 차의 가치가 1만원이다”는 게 손님의 대답이었다.

 정향정 회원들은 모임이 끝나도 자리를 쉽게 뜨지 않는다. 차를 마시며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회원들은 특히 이세원(50)씨가 내놓는 차를 좋아한다. 이윤정씨와 함께 겨자씨를 운영하는 이세원씨는 10년 넘게 해온 우리 차연구를 토대로 매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다.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부미용에 좋은 ‘황정차’와 달달한 맛의 ‘효소 커피’는 회원들에게 인기가 높다. 효소 커피는 커피 생두를 직접 볶고 갈아 발효시킨 것으로, 이씨가 개발했다.

 올 연말에는 회원 작품을 모아 전시도 열계획이다. 지난해 연말에도 카페에서 작은 규모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하다보면 수·목요일 회원이 모두 모여 친목을 도모하게 된다”는 이윤정씨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동호회 활동 기간이 긴 만큼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 문의=070-7532-5533

[사진설명] 정향정 회원들은 “모임이 있는 날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방영희(56)·김미현·신춘희·윤동미(50)씨.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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