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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업 쥐어짜기로 물가 못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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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물가 불안이 심상치 않다. 2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4.5% 올라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상한선(4%)을 2개월 연속 넘어섰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뜀박질하고 구제역과 폭설까지 겹쳤다. 이상 기후와 중국·인도의 수요 급증으로 국제 곡물도 고공행진 중이다. 해외의 물가 불안 요인들이 당분간 진정될 기미는 없다. 이런 추세라면 3월 소비자 물가에도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해외 충격으로 인한 물가 불안에는 마땅히 대처할 정책수단이 없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책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역풍(逆風) 속에서 성장·물가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현실에 맞게 ‘5% 성장, 3% 물가’라는 거시경제 목표부터 유연하게 손질하는 게 우선이다. ‘두더지 잡기’ 식으로 기업들을 쥐어짤 단계도 지났다. 정석(定石)대로 금리와 환율을 조절하는 근본적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무리하게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정책 노선이 성장 중심에서 경제 안정 쪽으로 급선회하면 당연히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금리가 오르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가계부채 부담은 늘어난다.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수출기업들 역시 원화 가치 상승으로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해외 불안요인이 가라앉을 때까지 안정 성장 기반을 다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 안정화 정책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를 빼고는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과 독립적인 금융통화정책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경제팀에는 케인스주의에 투철한 성장 우선론자가 대부분이다. 경제공황에 맞설 때와 뛰는 물가를 잡는 데 쓰는 칼은 완전히 다르다. 과연 똑같은 인물들이 전혀 다른 정책수단을 능수능란하게 다룰지 걱정이다. 물가 불안의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과연 안정 성장으로 돌아갈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自問)해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