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에서 조건부 정치활동을 선언한 재계의 움직임을 놓고 청와대.국민회의, 그리고 자민련은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공동여당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내부환경과 재계의 흐름에서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느냐는 대목이다.
국민회의 정책관계자는 5일 "여권의 전열이 일사불란할 때는 정치권을 향한 재계의 움직임이 조용하나, 그렇지 않으면 재계의 목소리가 강해지는 게 우리 정치의 오랜 경험이며, 지금도 비슷하다" 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현 정권 출범 직후 김대중 대통령과 박태준 자민련 총재로 이어진 수뇌부는 재벌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정.재계 간담회에서 부채비율 감축.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재벌개혁의 5대 원칙이 합의됐다.
지난해말 공동정권의 내각제 갈등으로 재벌 구조조정 추진에 이상기류가 발생했다는 게 여권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
해를 넘기며 빅딜 시한이 2~4개월씩 늦춰졌다. 박태준 총재는 당시 "내각제 문제로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는 우려를 표명했다. 재계의 내각제 물밑 지원설(說)까지 등장했던 게 이 시점이다.
그러나 4월 9일 金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내각제 논의 중단' 을 선언하면서 '재벌개혁' 은 다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4월 하순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계획 발표, 대한항공 경영진 교체, 현대그룹의 대폭적인 구조조정안이 잇따라 나왔다.
7월 내각제가 물 건너 가며 재계개혁은 더욱 힘을 얻었다. 10월 16일 김우중(金宇中)전경련회장이 회장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옷 로비.언론장악 문건 사건으로 여권의 난맥상이 증폭되면서 재계의 목소리가 거세졌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노동계.시민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우리도 자구(自救)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고 강조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조건부 정치참여는 노동계의 움직임에 대한 상응 조치일 뿐, 공동정권 내부의 기류와는 관계없다" 고 설명했다.
11월 중순 이후 재계측은 "각종 제도를 만드는 국회 등 정치권의 동반개혁이 필요하다" (19일.좌승희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 "결함있는 제도를 시정하려는 정치개혁이 우선돼야" (13일.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 등의 주장을 제기했다.
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