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천년 도전현장] 4.정보통신산업의 주도권을 유지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미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실리콘밸리로 가는 101번 도로는 엄청나게 붐볐다.

편도 4차선 넓은 도로가 승용차.트럭들로 빽빽했다.

특히 트럭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됐다.

흑인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이 컴퓨터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싣기 위해 실리콘밸리로 가는 트럭들" 이라면서 "최근 이 지역이 호황을 보이면서 교통체증이 무척 심해졌다" 고 말했다.

꼭 3시간만에 도착한 실리콘밸리. 중심지역인 샌호제이는 예상밖으로 황량했다.

변변한 고층빌딩은 눈에 띄지도 않았고, 산업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흔한 굴뚝도 없었다.

그러나 간선도로 뒤편 곳곳에 자리잡은 평범한 2~3층짜리 건물에는 첨단 벤처업체들이 즐비하게 입주해 있다.

이들은 거대한 장치산업도 좀처럼 따라올 수 없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미국의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꼬마 다윗들이다.

최근 인터넷 공짜전화를 개발해 명성을 높인 다이얼패드(Dialpad.com)사의 안현덕(安賢悳.35)사장은 "지식과 창의력으로 먹고 사는 동네인 만큼 볼 만한 게 없는 것이 당연하다" 면서 "그런 사실 자체가 바로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 이라고 강조했다.

넷스케이프 본사가 자리한 서니베일 미들필드 487.홍보담당자인 크리스틴 하이로넬 선을 따라 코발트색 건물 2층의 중앙컴퓨터실로 들어섰다.

"이곳이 우리가 돈을 벌어들이는 곳입니다. " 그녀가 가리키는 4인치 케이블 속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광섬유가 들어 있었다.

1초에 5억개의 비트(Beat)를 판매함으로써 연간 4억4천7백만달러의 매출과 4억달러의 순익을 가져다주는 '퀀텀 경제(Quantum Economy)' 의 주역이다.

디지털 경제시대의 본격 개막을 맞아 실리콘밸리는 요즘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입주 업체들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구인광고가 가득하고, 집값도 엄청나게 뛰어 웬만한 집 한채 가격이 2백만달러에 육박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최고급 주택가 베벌리 힐스를 능가할 정도다.

2000년도식 벤츠 새 모델을 사려면 주문한 뒤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팔로알토 유니버시티 애비뉴 233 센조 레스토랑. 청바지 차림의 더벅머리 청년들이 값 비싼 프랑스 요리를 겁도 없이 척척 주문한다.

꽃무늬 자잘한 앤타일러 투피스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성들에게서는 최고급 갤랑 향수가 은은히 풍겨난다.

요리접시를 나르는 웨이트리스에게 슬쩍 물어본 그녀의 연간 수입은 약 4만달러. 미국 근로자 평균소득이 2만8천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그녀는 대단한 고임금을 받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에 돈 냄새가 풀풀 난다는 것은 그만큼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경제의 체온계다. 미국 경제의 힘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성장의 40% 이상을 담당하는 하이테크 산업에서 나오고, 실리콘밸리는 이를 이끄는 견인차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떠오르는 디지털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9년간 이어진 미국 경제의 호황은 대부분 정보통신산업의 발달에서 기인했다.

정보통신산업의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미국 경제는 '고성장' 과 '저물가' 라는 서로 가는 방향이 다른 두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지적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정부는 정보통신산업을 새 천년들어 미국 경제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할 가장 믿음직한 보루로 보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고급 기술인력의 지속적인 확보와 디지털 경제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해외 고급두뇌에 대한 비자발급 한도를 전년도의 6만5천명에서 99~2000년 회계연도에는 11만5천명으로 대폭 늘린 것이 단적인 예다.

정보고속도로의 구축을 서두르는 것도, 인터넷 상거래의 활성화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각 주정부는 인력.기술력.아이디어.벤처자본을 유기적으로 결합,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제2, 제3의 실리콘밸리 유치.조성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라는 것은 원래 '공정한 경쟁규칙' 과 '기업가 정신' 에 따른 민간주도형 경제인 만큼 관(官)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

결국 개개인의 통찰력과 창의력, 그리고 이를 기업활동으로 뒷받침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크랩토그래피사 대표 폴 카치(22)와 컴퓨터 전문가 휴 대니얼은 "21세기 실리콘밸리의 키워드는 '3개의 E자' " 라고 단언했다.

'전자상거래(E-Commerce)' '암호(Encripton)' , 그리고 '이식(Enbedment)' 기술이다.

전자상거래는 이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보편화된 단어가 됐고, 암호는 인터넷 상거래나 정보교환 때 정보누출을 막기 위해 암호화하고 해독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식은 컴퓨터칩을 기존 설비나 장비에 삽입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물론 인체도 포함된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10년 뒤에는 어떨 것 같으냐" 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기서는 한 세대가 6개월인데 10년 후를 어떻게 예상하겠느냐" 고 되물었다.

기술의 변화는 그만큼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현재에 와 있는 미래의 땅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