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매몰지 ‘빗물 웅덩이’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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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7일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 우려로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의 매몰지를 덮은 비닐 위로 이날 내린 빗물이 고여 있다. [이천=연합뉴스]

54㎜ 이상의 비가 내린 27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도리리의 한 돼지 농장. 분뇨 더미에서 나온 흑갈색 빗물이 농장 입구를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뒤뜰로 들어서자 비닐로 덮은 돼지 매몰지가 나왔다. 둔덕과 축사 사이에 돼지 1600여 마리를 묻은 매몰지 주변은 물웅덩이로 변해 있었다. 소형 굴착기가 배수로 한가운데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어렵게 배수구를 찾았지만, 배수구가 막혀 주변은 작은 연못처럼 보였다.

마을 주민 지인구(56)씨는 “이곳에서 200m 거리에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대형 관정이 있다”며 “(지난달 20일) 매몰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시청에서는 아직도 침출수 한 번 퍼내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로 같은 마을길을 돌아 500여m를 더 들어가자 방역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축사가 보였다. 남한강 지류 양화천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 옆 10m 거리에 만든 매몰지는 성토한 봉분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매몰지 비닐 덮개 위로 빗물이 고이자 공무원들이 바가지로 빗물을 퍼냈다.

 27일 많은 비가 내리면서 전국에 구제역 매몰지 비상이 걸렸다. 구제역 매몰지에 빗물이 들어가 무너져 내리면 2차 환경오염이 될 수 있어서다.

이날 1만3800여 명의 방역 공무원들이 비상 근무에 나서 2차 오염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5일에 동원된 인원까지 합하면 이틀간 연인원 2만7000여 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매몰지에 방수 천막을 덮었고, 주변에 배수로도 팠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 오후 2시 충남 천안시 병천면 관성리 마을. 1월 2일 충남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곳이다. 관성리 구제역 가축 매몰지 5곳에는 돼지 2000여 마리와 한우 200마리가 묻혀 있다. 매몰지 중 3곳은 소하천과 10m 이내에 있다. 이날 내린 비로 매몰지 주변 곳곳에는 흥건히 물이 고였다. 매몰지 옆 하천 물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매몰지에 스며든 빗물 가운데 일부가 침출수와 섞여 흘러나온 것으로 보였다.

 경기도 각 지자체도 매몰지 실명제를 통해 특별관리에 나섰지만 허술한 곳이 여럿 드러났다. 일부에서는 방수 천막이 없어 빗물이 그대로 매몰지로 흘러들어갔다.

 이천시의 한 공무원은 “경기도 내 397곳에 이르는 매몰지를 공무원들이 24시간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붕괴나 유실 위험이 있는 곳 위주로 여러 명이 공조하다 보니 개별 관리에 소홀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익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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