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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1화 멈추지 않는 자전거 54년 ⑦ 겔포스와 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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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009년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겔포스’(사진)가 일반 위장약 중 부동의 1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위장약’이란 광고 문구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위장약 겔포스와의 인연은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름 나는 선진 제약업계를 돌아보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유럽 순방을 했다. 일본 약사시보사가 주최하는 유럽 의약품업계 시찰 행사에 초청돼 선진 각국의 제약업체들을 둘러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프랑스·덴마크와 미국·인도 등 9개국을 순방하며 선진 제약사들의 시설과 경영 시스템을 직접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이때 우연히 접한 약이 ‘포스파루겔’이었다. 유럽 각국을 돌며 낯선 음식을 먹고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위장이 쓰린 날이 많았다.

어느 날 프랑스의 한 공장에서 물도 필요 없이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위장약을 샘플로 줬다. 아침부터 쓰린 속을 달래고 있던 나는 당장 그 약을 먹었고, 불과 1~2분 만에 거짓말처럼 속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나는 호텔로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그 약을 여러 개 구입한 후 살피고 또 살폈다. 아침·저녁으로 복용한 덕분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입에 맞지 않던 기내식을 한 번 더 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1969년 유럽 약품업계 시찰 후 귀국하는 김승호(왼쪽에서 첫번째) 보령제약 그룹 회장.



 그 약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곧바로 포스파루겔을 생산하는 비오테락스사와 기술제휴를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결국 3년 만인 72년 기술제휴 협약에 성공했고, 이후 3년 동안의 자체 개발을 거쳐 75년 국내 생산에 들어갔다. 이름은 보다 부르기 싶게 겔포스로 지었다. 반(半) 고체 상태를 뜻하는 ‘겔(gel)’과 ‘포스파루겔’의 합성어였다.

 위장약은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팔리는 제품이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더욱이 짜고 맵게 먹는 한국인의 식성 때문에 위장질환은 만연돼 있는 질병의 하나로, 당시 고혈압·심장병과 더불어 3대 질환으로 꼽혔었다. 그러다 보니 소화기관용 약 개발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업체가 많아 경쟁이 심했다. 당시 한독약품의 ‘훼스탈’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겔포스의 성공을 확신한 것은 그 특별한 제품 형태와 탁월한 효능 때문이었다. 겔포스는 소화기관의 코팅제로서, 손상된 조직과 점막을 감싸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료제였다.

 겔포스는 1회용 정량을 20g으로 포장해 휴대가 편했고, 여행 중이나 작업 중에도 제때 복용하는 게 수월했다. ‘주머니 속의 위장약’이란 닉네임처럼 국내 최초의 1회용 액체 위장약이라는 게 큰 장점이었다. 발매 첫해 6개월 동안 6064만원어치를 공급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직장인·학생·주부 할 것 없이 남녀노소 찾는 사람이 늘었다. 덕분에 80년 16억원이 넘는 생산 실적을 기록함으로써 국내 소화기관용 약품 판매 순위에서 일약 2위에 올랐다. 말 그대로 ‘무섭게 팔려나간’ 것이다. 남다른 광고전략도 한몫했다. 겔포스 광고는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특히 한창 인기를 누리던 MBC-TV 드라마 ‘수사반장’에 출연했던 최불암씨 등 유명 탤런트들을 캐스팅한 TV 광고는 “위장병, 잡혔어!”라는 말을 인기어로 유행시켰다. 녹슨 철모에 호랑나비가 앉아 있는 사진의 위아래에 ‘위장에 평화를’ ‘주머니 속의 액체 위장약’ 등의 광고 문구를 담은 홍보 패널도 눈길을 끌었다.

 2005년 겔포스 생산 30주년 기념식에서 발표된 누적 판매 개수는 15억 개.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네 바퀴 이상 돌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국내에서뿐 아니라 대만에 이어 중국에도 수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국내 완제 의약품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해 제산제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1위 제품이 되었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프랑스에서 내 속이 쓰리지 않았다면, 마침 그때 그 회사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낯선 약의 샘플을 주저 없이 복용해 보지 않았다면 지금 겔포스는 없지 않았을까. 제약회사 경영자는 언제나 스스로 가장 먼저 마루타가 되고 임상시험 대상자를 자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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