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빈 라덴이 마약 먹여 시위대 배후 조종했다” … 궁지에 몰린 카다피 궤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24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부 알바이다에서 한 남성이 총과 탄알로 무장한 채 장갑차 앞에 서 있다. 알바이다는 현재 시민군이 장악하고 있어 사진 속 남성은 시민군으로 보인다. 25일 트리폴리에선 시민군과 친카다피군과의 전투가 벌어졌다. [알바이다 AP=연합뉴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가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방패막이로 삼고 나섰다. 42년을 버틴 정권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적을 또 다른 적으로 막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들고 나온 셈이다.

 카다피는 24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행한 전화 연설에서 이슬람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리비아 반정부 시위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수도 트리폴리 인근 자위야에서 벌어진 무력충돌과 관련, “시위대가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 편으로 돌아섰다”며 “빈 라덴이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알카에다 요원들이 10대들에게 “밀크커피에 환각제를 타서 먹이고 있다. 아이들을 세뇌시키고 잘못 행동하도록 지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다피

 카다피가 알카에다를 지목한 이유는 유혈진압에 대한 명분쌓기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적을 명시해 자신의 친위세력을 결집하게 하고 이들의 무력 사용이 외부의 적을 향한 것임을 주장해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의 비난과 제재 움직임을 무마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실제로 카다피는 연설 중 빈 라덴과 알카에다 요원들을 가리켜 “미국과 서방이 현상수배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했다.

 카다피와 알카에다의 악연은 1995년부터다. 그해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인 ‘리비아 이슬람 투쟁그룹(LIFG)’이 리비아에서 결성됐다.

알카에다의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97년 “LIFG가 알카에다에 합류키로 했다”고 선언한다. LIFG의 목표는 이슬람주의 국가의 수립인 만큼 ‘카다피 타도’를 내세웠다. “억압적이고 부패한 반이슬람 정권”이라고 카다피 정권을 규정했다. LIFG가 출현한 곳도 현재 반정부 시위의 중심인 벵가지와 벵가지 동쪽 데르나 지역이다. LIFG는 96년 카다피 암살도 시도했다.

 알카에다가 서방에 테러집단으로 낙인찍히자 카다피는 알카에다와의 대립을 통해 서방과의 관계 회복에 나섰다. 99년 알카에다와의 전쟁을 선포한 카다피는 2001년 9·11 테러가 발발하자 누구보다 먼저 알카에다에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리비아는 2003년 유엔의 제재를 벗어났고 2006년엔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LIFG로 추정되는 이슬람 무장그룹들은 최근의 반정부 시위 국면에서도 무력 투쟁을 이어갔다. AFP 통신은 알카에다 출신 무장집단이 지난 16일 리비아 동부 데르나의 육군 무기고에 난입해 250점의 무기를 강탈하고 20명의 군인을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혔다고 보도했다. 18일엔 데르나 항을 공격해 군용차량 70대를 탈취했고 인근 알바이다에서 경찰관 2명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히틀러처럼 자살할 것”=무스타파 압둘 잘릴 전 법무장관은 스웨덴 신문 엑스페레손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고, 아돌프 히틀러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직선적인 성격이어서 망명이나 항복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존심을 지킬 거라는 주장이다. 히틀러는 45년 4월 독일 베를린이 소련군에 함락되자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충형·남형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