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강진] “120명 매몰된 방송국, 무덤으로 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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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무너진 CTV 건물을 24일 구조대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실종된 유씨 남매도 이곳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 [크라이스트처치 AFP=연합뉴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으로 인한 사망 확인자가 98명(24일 현재)으로 집계된 가운데 실종된 한국인 유학생 유길환(24)·유나온(21) 남매의 생존이 사흘째 확인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구조 당국은 이들이 도심에 위치한 CTV 건물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매가 다니던 킹스 교육어학원이 위치한 곳이다.

 24일 오후(현지시간)엔 남매의 아버지 유모(57)씨가 강원도 횡성에서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 사진을 돌리고 병원을 확인해 보고자 왔다. 아들과 딸은 반드시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은 지진 이틀 전인 20일, 아들은 지진 2시간 전에 메일을 보내 왔다”면서 “아들의 성적이 올라 좋아하던 차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씨 남매를 포함, 어학원에 다니던 각국 유학생과 CTV 방송국, 간호학원 직원 등을 합쳐 48명이 실종 상태다. 구조 당국은 일본인 유학생 27명 등 최대 120명이 이곳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방송국 건물이 하나의 무덤으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구조대는 23일 오후 “마음이 아프지만 생존자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큰 곳에 인력을 집중하겠다”며 현장해서 철수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 등의 구조 요청이 이어져 작업을 재개했다.

 현지 경찰은 이날 현재 실종자는 226명, 부상자는 2500여 명이라고 밝혔다.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지며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건물 더미에 깔린 수백 명의 생존 신호는 희미해지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사망자 수가 우리의 예상을 훨씬 초월할 수 있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도 “세계 각지에서 재난 발생 며칠 뒤, 경우에 따라선 몇 주 뒤에 기적적으로 구조된 이야기들을 우리는 접해왔다”며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강조했다.

 지진 발생 다음 날까지 구출한 생존자는 30여 명에 달했지만 그 다음 하루 동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경찰은 최대 22명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심 광장의 대성당 건물 잔해에서도 생존자가 있을 희망을 포기한 상태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이날 현재 무너진 건물 중 60%에 대해 수색 작업이 마무리됐다. 여진 피해를 우려해 주요 도로의 통행은 여전히 통제된 상태다. 상수도의 80%, 전력의 40%는 아직 복구되지 못했다. 시민들은 식수와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으로 몰려들고 있다. 지진의 충격을 잊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는 시민들도 매일 수백 명씩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

 피해 복구를 위해 자원봉사 대학생들도 몰려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지진 피해자들을 돕자는 운동이 확산되면서 1만여 명의 대학생이 크라이스트처치를 찾아 ‘대학도시’가 ‘자원봉사의 도시’가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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