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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80)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김영진, heakwan@ymail.com

단식, 개안수련 4

개안수련 중엔 풍욕의 순서도 있었다.
날이 좋으면 숲으로 들어가 하지만,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단식원 건물에서 풍욕을 시행했다. 땅거미가 내려와 어둠침침할 때쯤, 창문을 있는 대로 다 열어놓고 옷을 벗고 좌정한 채 명상수련을 삼십 분씩 하는 수련이었다. 남녀가 유별하지 않았다. “몸은 껍데기에 불과해요!”라고, 백주사는 타일렀다. 초보자들은 남녀가 함께 앉아 있는 상태로 옷을 벗는 일에 대해 몹시 곤혹스러워 했다. 그러나 처음뿐이었다. 막상 풍욕을 경험하고 나면 대개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사기(邪氣)로 막혀 있던 경혈과 경락이 열려 자연치유력이 내부에서 높아지는 걸 감각으로 느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하루만 굶어도 고통스럽기 마련이었다.
백주사는 허기와 권태야말로 단식의 일차적인 적이지만, 목표를 분명히 세우면 ‘용맹정진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영적장애라고 했다. 이사장과 달리 백주사는 퇴마사에 가까웠다. 스스로 빙의를 천도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무기를 갖고 있다고 소개한 적도 있었다. 단식 사흘째, 한 남자가 사지를 벌벌 떨며 쓰러졌다. 백주사가 달려들어 남자의 오장육부를 호되게 만지면서 뭔가를 힘껏 끌어내는 시늉을 했다.

"네가 뭔데 여기에 붙어 있느냐!” 백주사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소리쳤다. 갈빗대 사이를 후벼 파기도 하고 등짝을 내리치기도 했다. 남자는 잠시 후 잠잠해졌다. 백주사가 손바닥을 펴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놀랐다. 백주사의 손바닥엔 검붉은 핏덩어리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장부(臟腑)에 붙은 조상의 악령을 끄집어낸 것이라고 백주사는 말했다. 이사장은 그곳에 없었다. 이사장은 그런 식의 퇴마의식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백주사의 퇴마의식은 그래서 이사장이 없을 때에만 행해졌다. 쓰러졌던 남자에게 6.25 때 모함에 의해 죽창으로 처단된 숙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다음날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영령, IMF 사태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영혼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기관원인 남편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됐다가 끝내 죽고 만 낯선 남자의 빙의령이 들러붙어 뇌종양으로 발전했거나, 몰래 낙태한 어린아이의 빙의령이 간에 붙어 발병한 여자도 있었다.
단식이 진행되면서 특정부위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병에 따른 제반증세가 일시적으로 악화되고, 구토증, 복통, 발열, 발진이 돋는 경우도 있었다. 통증이 생기는 것은 질병부위의 신경이 재생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종의 명현반응이고, 열이 나는 것은 병을 물리치기 위한 자활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며, 설사나 구토는 몸 안의 독소를 빼내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했다. 모든 통증에 대한 처방은 ‘명안수’를 두 배로 늘려 마시는 것과 죽염섭취였다. 이런 부작용은 대개 곧 가라앉았다. 특이한 것은 단식이 이삼 일 계속되면 모든 사람에게서 악취가 심하게 난다는 점이었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악취가 났다. 역시 독기가 빠지는 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과장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단식 5일째였다.
그 무렵 명안진사는 낯선 인부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머지않아 문화궁 건축에 대한 심의가 끝난다는 말이 들렸다.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공사는 부분적으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문화궁 공사만 재개되는 게 아니었다. 문화궁 앞의 너른 망초밭에 현대식 고급 복지 휴양시설을 짓겠다는 설계도가 시 건축과에 제출되어 있는데 그 역시 낙관적이라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뻔질나게 시청과 명안전을 드나들었다. 이사장의 치밀하고 과감한 로비를 뒷받침 받아 사무적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분위기가 낙관적으로 돌아가게 되자 프로그래머는 모든 것이 자기 혼자만의 공로인 양 턱을 잔뜩 치켜들고 다녔다.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젊은 서씨였다.
포클레인이 한 대 더 늘어났고, 낯선 인부들도 속속 들어왔다. 노과장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것도 낯선 인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서 형사들을 안내하고 나온 것은 샹그리라 207호실 최순경이었다. 계속 영하의 날씨였기 때문인지 노과장의 시신은 거의 썩지 않은 채 원형을 보전하고 있었다. 철근에 가슴이 꿰고 뒤통수가 부분적으로 함몰된 상태였다. 누구랑 싸운 흔적은 없었다. 살점의 일부가 뜯겨나가긴 했으나 검안의는 그것은 들쥐나 짐승의 소행이라 진단했다. 외상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었는지, 노과장은 짓다 만 건물의 삼층까지 올라갔다가 층계참에서 실족해 떨어져 죽었다는 결론이 잠정적으로 나왔다. 내가 민 것만 빼면, 추락사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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