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함께 쓴 농구역사 잊지 않겠습니다"

미주중앙

입력

16년간 숭의여중고 감독 / 박찬숙 등 대표 29명 배출 / 한국여자농구 전성기 이끌어

고 김정욱 감독은 여자농구 '숭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한국 농구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제자들의 초청으로 한국 숭의여고를 찾았던 고 김 감독(가운데)의 모습. [중앙포토]

"선생님! 결국 이렇게 저희곁을 떠나십니까."

한국 농구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고 김정욱 감독(향년 76세)의 장례식이 22일 오전 11시 캘리포니아 위티어의 로즈힐스 공원묘지에서 엄수됐다.

조귀영 함정숙 김옥진 박경자씨 등 숭의여고 시절 고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았던 오렌지카운티 거주 제자 4명은 이날 스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15일 지병인 암으로 별세한 고 김 감독은 1962년 창단된 숭의여중.고의 초대 감독이었다. 그는 지휘봉을 잡은 지 3년만에 중학교와 고등학교팀을 최고 수준의 팀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여고 농구팀은 65년 전국 여고 대표로 일본원정에 참가해 전승을 거둔 이후 '숭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김 감독은 16년간 재직하며 국가대표를 29명 배출했고 그 가운데 21명이 대표팀 주전이었다.

중년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법한 박찬숙 정명희 이옥자 정미라 등은 김 감독이 배출한 대표적 스타들이다.

고 김 감독은 1978년 미국에 왔다. 최근 벨플라워로 이사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라팔마에 거주했던 그는 비즈니스에 종사하면서도 농구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1980년 재미농구협회 창설에 기여했고 2009년까지 이사를 맡았다. 1980년 미주 중앙일보가 주최한 '중앙일보 쌍용기 농구선수권대회 미주대표 선발전'을 통해 선발된 12명의 선수들을 인솔해 한국에서 열린 본선에 참가한 적도 있다.

박진방 오렌지카운티 한인회 초대 회장의 부인인 조씨는 숭의 농구부에서 고 김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조씨는 "학창 시절 감독님은 별명이 호랑이일 정도로 엄격했지만 중년 이후 만난 감독님은 마음씨 좋고 미소가 온화한 할아버지였다"고 회고했다.

고 김 감독은 지난 2001년 대장암에 걸렸지만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2006년엔 옛 숭의여중.고 제자들의 초청으로 '제 6회 농구동문 홈커밍데이'가 열린 숭의 교정을 찾았다. 제자들은 항공료와 체재비는 물론 양복까지 제공했고 제자들의 꽃다발속에 파묻힌 스승은 마냥 행복해 했다.

'호랑이 김 감독'은 행사 이후 귀국해 OC지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물까지 살짝 비쳤다. 숭의 전성시절을 이끈 비결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 재단과 학교의 지원과 훌륭한 선수들이 많이 입학한 덕분"이라며 공을 제자들에게 돌린 바 있다.

인생이란 이름의 코트에선 누구나 언젠가 차가운 종료 부저 소리를 듣게 운명지워져 있다. 고 김 감독도 근년 들어 재발한 병마와 싸우던 중 코트를 떠나야 했다.

한국에서 비보를 들은 숭의여고 농구부 제자들은 17일 조씨에게 추도사를 보냈다. 조씨는 장례식장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스승에게 바쳤다.

"이제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저희곁을 떠나셨어도 제자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계실거라고…."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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