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서민 정책 될 임대료 상한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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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호 02면

민주당과 민노당이 또 서민 보호와 서민생활 안정을 주창하고 나섰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과 임대계약 자동갱신제 얘기다. 민주당은 얼마 전 전·월세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기존 세입자와 재계약할 때 집주인은 임대료를 5% 이상 올려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집주인은 당연히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 세입자를 구할 것이다. 이를 막고자 1회에 한해 재계약을 의무화하는 임대계약 자동갱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대차 계약기간이 사실상 4년으로 늘어난다는 의미다. 민노당은 한 발 더 나갔다. 재계약 의무횟수를 두 번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럴 경우 계약기간은 6년으로 늘어난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참 희한한 정당이다. 민주당은 바로 직전까지 집권 여당이었다. 그때는 가만있다가 야당이 된 지금 하자니 말이다. 하긴 똑같은 주장을 한 적은 있다. 2006년 12월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5%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갱신 조항은 없었지만, 대신 계약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여당이었기에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는데도 유야무야됐다. 상한제가 불러올 후폭풍이 엄청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지 싶다.

이와 관련해 노태우 정부는 큰 홍역을 치렀다. 1989년 12월 정부는 세입자를 보호한다며 임대차보호법을 고쳤다.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단지 이것만 했는데도 전세 문제는 갑자기 대란(大亂)으로 비화됐다. 임대료가 폭등하고 세입자들은 길거리에 나앉았다. 언론들은 연일 이를 대서특필했다. 경향신문만 챙겨 보자. 이듬해 2월 14일 이 신문에는 ‘전셋값 폭등, 50대 자살’이란 기사가 있다. “계약기간이 2년으로 늘면서 전셋값이 폭등하자 서민들이 전세금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와중에 “전셋값 인상을 요구받은 50대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임대차보호법에 쫓겨나는 사람들’이란 기사도 있다(90년 2월 23일).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더 싼 집으로 이사 가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기간이 2년으로 늘면 집주인은 임대료를 올리기 힘들어진다. 법이 시행되기 전에 2년치를 한꺼번에 올리자고 해서 벌어진 대란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상한제와 계약갱신제를 덧붙인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상한제 찬성론자들은 “외국은 이미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골병들고 있다는 건 무시한다. 상한제는 참패한 정책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0년대 후반 임대료가 급등하자 상한제를 시행했다. 그러자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이 속출했다. 임대료 받아야 손해라며 세를 놓지 않고 빈집으로 그냥 두는 주인이 늘었다. 신규 임대주택 공급은 끊겼고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오피스텔 등에만 투자가 몰렸다. 집주인의 파워는 막강해졌다. 집 앞에 줄지어 선 세입자 가운데 누군가를 선택했다. 저소득층과 유색인종에게는 임대하지 않으려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홈리스가 급증하기 시작한 건 이 무렵이다.

이런 게 서민을 위한 정치라면 소가 웃을 일 아닐까. 공급은 줄고, 임대료는 폭등하고, 저소득층 세입자는 길거리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이 정부가 잘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무능한 정부라는 생각이다. 이번 대란의 책임은 상당 부분 이 정부에 있다. 일어날 걸 뻔히 알면서도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역행하는 정책도 폈다. 전량 임대했어야 할 보금자리주택은 대부분 분양했다.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하는데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 하락세를 막으려 했다. 서둘러야 했을 금리 인상은 미적대기만 했다. 전세 수요는 늘리고 공급은 줄이는 정책들이었으니 대란은 불가피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게 상한제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여야 모두 지금이라도 폐기하라. 전세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리는 정책에만 전념하라. 그게 진짜 세입자 파워를 키우는 길이다. 입으로만 친(親)서민 외치는 반(反)서민 정당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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