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새총재 놓고 독일 영국 일본 힘겨루기

중앙일보

입력

내년 2월 물러나는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의 후임을 둘러싸고 영국.독일.일본이 치열한 3파전에 들어갔다.

아직 초반전이기는 하나 독일과 영국이 유럽의 기득권을 강조하며 선두에 나서고 있고 일본은 '미스터 엔' 인 사카키바라 에이스케(□原英資.58) 전 대장성 재무관이라는 '강타자' 를 후보로 내세웠다.

특히 독일과 영국은 그동안 프랑스에 내리 25년간 IMF총재 자리를 독식당한 분풀이를 하겠다며 의욕에 넘쳐 있다.

◇치열한 3파전〓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독일의 카이오 코흐베서(55) 재무차관.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독일 정부도 거국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경제력에 비해 국제금융계에서 목소리가 작았던 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후임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스 아이헬 재무장관과 유르겐 스타르크 부총재는 23일 인터뷰에서 "오랫동안 프랑스인이 IMF총재를 맡아온 만큼 이제는 독일 사람이 맡을 차례" 라며 "코흐베서를 차기 IMF총재로 만들기 위해 미국 등과 적극적인 막후 교섭을 펼치고 있다" 고 밝혔다.

지난 5월 세계은행 부총재직을 떠나 슈뢰더 내각에 참여한 코흐베서는 26년간의 공직생활 중 거의 대부분을 세계은행에서 보내 미국과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영국은 과거 세계금융 중심지라는 명성을 되찾아 권토중래하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대중적 인기도가 높은 고든 브라운(48) 재무장관이 나섰다.

해박한 경제적 식견과 개혁적 성향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그는 IMF총재직을 징검다리로 해서 차기 총리에 도전한다는 각오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IMF가 공식 성명에서 "브라운 장관의 탁월한 능력으로 영국경제가 성장궤도에 올라탔다" 고 극찬한 것은 IMF내부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머니 파워' 를 앞세운 일본은 유럽 내 의견조정이 쉽지 않은데다 그동안 유럽이 총재직을 독식해온데 대한 다른 지역 회원국들의 반발을 이용, 최초의 '아시아권 총재' 를 노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자에서 "현 상황이 사카키바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는 전망까지 내놨다.

사카키바라의 국제적 지명도에다 아시아지역 등에서 IMF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해볼 만한 싸움' 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참전' 으로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프랑스는 빔 두이젠베르흐 현 유럽중앙은행(ECB)총재 후임에 장 클로드 트리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사실상 내정됨에 따라 프랑스는 후보군에서 한발짝 물러섰다.

◇어떤 자리이길래〓IMF총재는 흔히 유엔 사무총장과 비교된다.

한쪽은 정치, 한쪽은 경제를 담당하는 양대 국제기구의 대표인데다 정치적으로 선출된 행정수반이란 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총재는 어느 면에선 유엔 사무총장보다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다.

유엔에선 각국 대표들이 각국 이해관계를 조정하지만 IMF에선 총재가 이사회의 위임을 받아 직접 사안을 챙기고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총재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국가에 대해 구제금융이나 채무상환의 전반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적 운명마저 결정되는 일이 다반사다.

최근 캉드쉬 총재가 "수하르토(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의 사임은 IMF정책 때문에 일어났다" 고 털어놓은 점도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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