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한 장 받아들고 … 스스로 공부하며 채워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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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교육원 입시에 관찰·추천제 전형이 도입되면서 교육업계에서는 사고력과 발표·토론 능력을 부각시킨 프로젝트형 수업이 주목 받고 있다. 관찰·추천제에서 강조하는 과제집착력과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 주된 목표다. 학원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고력 수학수업 현장을 찾았다.

글=이지은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학생들이 ‘균형’을 주제로 교구를 활용해 공부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설명은 정확해요. 그런데 그 선이 평행한 이유가 뭐죠?” 9일 오후 서울 대치동 CMS에듀케이션 학원 ‘나는 수학자’ 수업 교실. ‘균형’을 주제로 삼각형 중점연결정리를 명쾌하게 설명한 박정호(서울 대도초 4)군에게 조윤상 연구원이 칭찬 대신 질문을 던졌다. 단상에 서서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던 박군이 자못 진지하게 “지금은 왜인지 얘기할 수 없어요”라고 답하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조 연구원은 “이유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이 “이유를 설명해 볼 사람?”이라며 교실을 둘러보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이 프로그램은 4주간 한 가지 수학 주제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초등 4, 5학년을 대상으로 도형과 함수·통계 등 정규 교과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수학 영역을 12개 프로젝트로 구성했다. 1년간 원리 습득부터 발표와 토론, 포트폴리오 작성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교재는 없다. 수업시간에 나눠주는 자료는 백지로 된 A4용지가 전부다.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학생의 몫이다. 교사는 지루한 강의 대신 발문(학생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유도질문)으로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재윤(서울 원명초 4)군은 “선생님의 질문을 토대로 친구들과 주제를 잡아 역할을 분담해 연구자료를 만든다”며 “내가 직접 알고 싶은 원리를 찾아 연구하기 때문에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최종 목표는 영재교육원 합격이 아니다. 이미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학생도 상당수다. 올해 강동교육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김이지(서울 세륜초 4)양은 “아직 남들 앞에서 유창하게 발표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수업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며 “단상에서 발표하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친구들이 알려주기도 해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김양의 어머니 이성화(46·서울 송파구)씨는 “한가지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실력을 쌓아야 고학년이 됐을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며 “지루한 연산연습이나 단순 선행학습을 싫어하는 아이가 이 수업만큼은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팀별 프로젝트 수행이 많은 영재교육원 수업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협동심과 리더십,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한 평가요소”라며 “단기간에 교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충국 CMS에듀케이션 대표
“공식 생긴 배경 알고 나면 어려운 문제도 걱정 안 해”

-CMS에듀케이션 출신 영재교육원 합격자가 많다고 들었다. 무엇 때문인가.

“새로운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을 양성하기 때문이다. 수학적 사고력, 과제집착력과 함께 리더십과 표현력, 토론능력까지 갖춘 학생을 장시간 공들여 배출한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등급을 매겼던 지난 입시제도보다 관찰·추천제에서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10년 전 처음 개발했을 때 외면당했던 사고력 수학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부쩍 인정받는 느낌이다.”

-사고력 수학 수업이 필요한 이유는.

“시간이 흘러 학생이 고학년이 됐을 때 뚜렷한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나는 수학자’ 프로그램은 CMS에듀케이션이 13년간 축적한 영재교육 노하우와 임상수업을 거쳐 개발했다. 수학에 관련된 풍부한 경험을 쌓아주고, 수학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바꾸게 하는 것이 목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학생은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a²+b²=c²’이라는 공식만 받아 외우곤 한다. 반면 우리 학원에서는 초등 3학년부터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생애와 함께 공식이 발견되기까지의 과정, 이 공식이 사회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사례까지 직접 찾아 살펴본다. 피타고라스 공식에 대한 연구자료를 만들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심화문제를 풀며 교사와 토의도 한다. 고학년이 돼 어려운 피타고라스 문제를 접했을 때 어떤 학생이 더 문제 해결력이 높겠는가. 정답은 분명하다.”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모방부터 해야 한다. 모방은 우수한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토의하고, 반격을 받고 공격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길러진다. 타인의 우수한 점을 내 것으로 소화하고, 다양한 정보를 습득한 뒤 비로소 유의미한 창의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정의 환경과 부모의 마음가짐도 변해야 한다. 단기적인 결과에만 연연해 무리한 선행학습이나 당장의 성적 향상에만 치중하면 아이에게 반드시 무리가 온다. 아이 인생 전체를 놓고 장기간의 안목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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