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심술에 정치권 심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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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경기지사는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잔인한 살처분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적었다. 수개월이 넘도록 구제역을 다 잡지 못한 답답함을 표출한 것이다. ‘구제역 대재앙’이 발생 3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여권의 지도급 정치인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 민심’이 여권엔 악재 중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세계 물 포럼’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최근 구제역과 조류 독감으로 인한 가축 매몰지가 4000곳이 넘는 데다 토양이나 하천의 2차 오염도 큰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하루빨리 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4일에는 직접 경북 구제역방역대책본부를 찾아 “구제역이 이른 시일 내에 종식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그의 지역구인 달성군은 14일까지 구제역이 발생하진 않았으나 대구 지역에선 가장 큰 한우 사육 지역이어서 방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박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엔 자신의 미니홈피에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돼 축산농가들의 걱정을 덜어드렸으면 한다”고 적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개헌과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 등 다른 현안에 대해선 애써 무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와 관련해 친박계 한 의원은 “구제역은 민생과 직결된 문제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있는 개헌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와는 그 성격이 다른 만큼 박 전 대표가 관심을 나타내면서 조속한 해결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포항 남·울릉군) 의원도 지난달 14, 15일 포항을 찾아 구제역 방역작업을 하는 공무원들을 격려했다.

지역구인 포항 남구에서는 지난달 7일 한 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반경 500m 안의 가축 267마리를 살처분했다고 한다. 이 의원의 포항 사무실 관계자는 “이 의원이 지역 면장, 읍장, 농협장 등과 만나 상황 통제와 구제역 방역 등의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구제역으로 ‘리더십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 됐다. 경기도에서만 전국 살처분 마릿수의 54%가 살처분된 데다 매몰지도 2000여 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파주시에선 핏물로 변한 도랑이 발견됐고, 팔당 상수원의 오염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침출수로 인한 2차 피해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구제역 방역을 진두지휘해 온 김 지사는 7일 “정부가 독점한 구제역 검사 권한 중 1차 진단 기능을 지방에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구제역 발생을 계기로 축산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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