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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포항 개복치, 횡성 꿩 … 현지에서 최고 식재료를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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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향토 식재료로 만든 파인 다이닝 요리. 이 멋진 요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싱싱한 현지 재료가 서울로 올라와 접시 위 파인 다이닝으로 변신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기획했다. 셰프와 함께 떠나는 식재료 여행. 동행은 서울 청담동 ‘D6(02-511-9232)’ 레스토랑의 토니 유(33) 셰프였다. 평소 직접 전국의 장터에 내려가 장을 본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레스토랑 조광현(29) 수셰프도 여행에 동참했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첫 번째 여행 - 포항 죽도시장

포항 죽도시장엔 고래고기가 쌓여 있다. 살살 녹는 게 술안주로 딱이라 즉석에서 한 접시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마음 같아선 10접시라도 먹고 싶었다. 셰프는 “레스토랑에서 아뮤즈(서양식 안주)로 써야겠다”며 고래고기를 샀다.


첫 목적지는 경북 포항의 죽도시장. 죽도시장을 찾은 날은 올겨울 최대 폭설을 기록한 다음날이었다. 새벽 5시 서울에서 출발한 차는 오전 9시가 돼서야 죽도시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릿하면서도 상쾌한 바다 냄새가 확 풍겼다.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경상도 사투리가 따갑게 귀를 울렸다. 죽도시장은 1950년대 포항 내항 늪지대에 노점상이 모여들며 생겼다.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과 강원도 일대의 수산물이 집결하는 곳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규모도 크다. 지금도 점포 1200여 개가 촘촘히 들어서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과메기. 한겨울 동해안을 대표하는 별미로 포항 과메기가 특히 유명하다. 아직 머리와 꼬리를 안 뗀 과메기가 노끈에 엮여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토니 유 셰프의 단골집에 들어갔다. 윤기가 줄줄 흐르는 과메기 1만5000원어치를 사서 나왔다. 과메기 집을 나오니 ‘고래고기’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래고기를 통나무처럼 두툼하게 썰어 쌓아놨다. 한 접시 맛을 봤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토니 유 셰프가 “고래고기는 포항과 울산을 최고로 친다”며 “일단 여기서 해체하고 정형해 전국으로 보낸다”고 설명했다.

 고래고깃집 옆집에도 두꺼운 고깃덩어리가 잔뜩 쌓여 있다. 일명 돔베기. 상어다. 주인 아주머니가 “경상도 제사상엔 돔베기가 필수”라고 자랑을 늘어놨다. 시장 바닥에는 어린 아이만 한 돌문어도 꿈틀대고 있었고, 숯덩이처럼 생긴 군소(바다 달팽이)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시장 구경하고 가격 흥정하다 보니 금방 12시가 다 됐다. 토니 유 셰프는 그러나 아직 더 살게 남았다고 말했다. “개복치를 꼭 사가야 해요. 복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크기는 고래만 해요. 워낙 커서 부위별 맛이 다양합니다.” 셰프는 대창을 비롯해 개복치를 부위별로 잔뜩 샀다.

# 두 번째 여행 - 겨울 꿩과 동충하초

셰프가 들어가자 그 많은 꿩들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덮치려면 날아가고 덮치려면 날아가고. 그러나 끈질긴 사투 끝에 잡아 온 꿩은 식탁 위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다음 여행지는 강원도 횡성. 조곡리에 있는 ‘초암꿩농원(033-343-7700)’을 먼저 찾았다. 전인환(68) 사장이 22년째 꿩을 키우는 곳이다. 전 사장은 “조곡리는 새 ‘조(鳥)’ 자를 씁니다. 예로부터 새가 유난히 날아든 지역이어서입니다”라며 동네를 소개했다.

 초암꿩농원엔 꿩이 2000마리쯤 있다. 모두 토종 고려꿩이다. 무게만 따지면 외국꿩과 교잡한 수퍼꿩이 무겁지만, 토종 고려꿩은 뼈가 가늘어서 살이 많고 기름기도 적다. 꿩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겨울이 제철이다.

 쉴 새 없이 뛰노는 꿩 무리 속으로 전 사장과 셰프가 들어갔다. 큰 그물을 든 두 남자를 보더니 꿩이 일제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격투에 버금가는 추격전 끝에 장끼와 까투리를 잘생긴 놈으로 한 마리씩 붙잡아 나왔다. 꿩농원에서 끓여준 구수한 꿩만둣국으로 배를 불린 다음 동충하초 농장으로 향했다.

횡성군 고시리 ‘머쉬텍’에선 동충하초가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자연 속에서 고민없이 자란 동충하초는, 서울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도 그 생명력을 맘껏 발산했다.

 고시리에 있는 ‘머쉬텍(033-343-5844)’. 통 3000개 안에 오로지 동충하초만 조용히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적막한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있지만 최신 설비와 연구시설 덕분에 농장보다 연구소에 가깝다. 동충하초 전문가 성재모(68) 사장이 오대산·태기산·속리산 등지에서 직접 채집한 표본을 보여준다.

  “동충하초는 ‘겨울엔 벌레이던 것이 여름엔 버섯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보세요. 벌·파리·잠자리, 곤충 종류에 따라 동충하초도 가지각색이죠? 곤충에서 채취한 균주 중에서 우수한 걸 골라 현미에 이식한 다음 온도를 세심하게 맞춰 기르죠. 동충하초는 스트레스 감소와 면역력 증강에 효과적입니다.”

 동충하초를 통에서 한 가닥씩 뽑아 먹었다. 쌉쌀한 맛에 중독돼 선 채로 몇 통을 비우고 말았다. 동충하초 세 박스를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청담동 ‘D6’ 주방. 토니 유 셰프는 포항과 횡성에서 구한 재료를 손질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 냉장고에 붙은 전국 특산품 지도가 눈에 띈다.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요리가 몸에 좋다”는 말과 함께 요리를 시작했다. 푸드 마일리지는 식재료가 산지에서 소비자까지 오는 데 걸리는 거리를 뜻한다. 그러니까 가까운 데에서 구한 식료품으로 만든 요리가 몸에 좋다는 뜻이다. 이날 토니 유 셰프가 만든 요리는 모두 네 가지. 모두 ‘D6’에서 실제로 맛볼 수 있다.

이상은 기자

과메기 타르타르

모양은 깔끔, 재료의 매력은 그대로

과메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다진 과메기에 바삭한 실파를 가니시(음식에 곁들이는 장식)로 얹었다. 실파는 가니시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기름이 적당히 흐르는 차진 과메기에 바삭바삭한 식감까지 더한다. 전통적으로 과메기와 함께 먹는 초장·쌈장·김도 등장한다. 쌈장은 드레싱으로, 초장은 스페리컬(소스의 표면을 굳혀 젤리처럼 만드는 분자요리 기법)로, 김은 퓨레로 변신했다. 한 입 먹어 보니 죽도시장의 바다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투리가 떠오른다. 모양은 깔끔하고 세련되게 변신했지만 각각의 재료가 지닌 고유한 매력은 그대로 살아있다.

개복치 스테이크

생선같지 않은 쫄깃쫄깃한 식감

이름도 생소한 개복치. 그것도 대창 부위라니. 죽도시장에서 상어와 고래고기를 제치고 호기심을 가장 많이 자극했던 재료다. 개복치 대창을 살짝 구운 뒤 다시마 파우더를 발랐다. 두 가지 퓨레도 곁들였다. 섬초 퓨레와 배추 꼬리 퓨레다. 섬초는 전남 신안 비금도에서 재배한 시금치다. 배추 꼬리는 말 그대로 배추의 꼬리(뿌리) 부분이다. 토니 유 셰프가 개복치·섬초·배추 꼬리 조합의 의미를 설명했다. “바닷바람 맞으며 자란 섬초는 바다에서 자란 개복치와 어울리죠. 배추 꼬리는 땅의 힘을 상징해요. 퓨레 재료로 보통 샐러리악이라는 서양 채소를 많이 쓰는데, 배추 꼬리의 고소한 맛이 샐러리악을 능가하더라고요.” 개복치 대창은 생선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쫄깃쫄깃했다.

저온조리 꿩

60도 물에서 3시간 익혀

생꿩고기 냄새를 맡아봤다. 잡내가 나지 않는다. 셰프는 “넓고 청정한 환경에서 뛰어놀며 자란 꿩이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양념은 최소화했다. 올리브오일과 로즈마리에 재우고 진공 포장해 60도 물에서 3시간 익혔다. 요즘 인기인 수비드(진공 저온조리) 방식이다. “수비드를 하면 육즙이 빠지지 않아 고기가 더 부드럽다”고 말한다. 껍질은 따로 벗겨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게 튀긴 뒤 가니시로 얹었다. 소스는 2시간 우린 꿩뼈 육수. 마지막으로 헛개나무 열매 파우더를 뿌렸다. 갈기 전의 헛개나무 열매를 먹어보니 달콤한 과일 향이 났다. 저온조리한 꿩고기는 기름기 없이 담백했다. 마음껏 뛰어놀던 꿩을 생각하면 당연한 맛이다.

거품 속 동충하초

입안 가득 퍼지는 쌉쌀한 맛

겨울엔 벌레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여름에 버섯이 되는 동충하초. 벌레의 몸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생명력을 형상화했다. 우유로 미세한 카푸치노 거품을 만들어 동충하초를 꽂았다. 흡사 겨울철 눈밭에 피어난 모습 같다. 미세한 거품 역시 요즘 파인 다이닝에서 인기인 조리법. 부드럽고 풍부한 식감이 특징이다. 새하얀 우유 거품 아래엔 황토색 땅을 표현했다. 동충하초를 볶고 갈아 닭 육수에 섞어 만들었다. 햇빛을 받으면 녹아버릴 것만 같은 하얀 눈 위로 솟아난 동충하초. 횡성에서 느낀 생명력이 입 안에 그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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