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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백기를 들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빌 게이츠가 이 세상을 지배할 뿐 아니라 그 안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추종자들이 볼 때 지난주 역시 만사가 상당 부분 예정대로 전개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13차 연차 총회장을 가득 메운,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지분을 갖고 있는 주주들은 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게이츠는 탠디社에 1억 달러를 투자해 7천 개에 달하는 미국 전역의 라디오 섀크 체인점에 부티크형의 마이크로소프트 코너를 신설키로 한 계약을 발표했다.

또 적자를 내는 여행전문 웹사이트 익스피디어를 분리했다.
그에 따라 14달러였던 주가가 52달러까지 치솟으며 백만장자 몇 명을 새로 탄생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도 2달러 정도의 미미한 하락세 속에 한 주를 마감했다. 그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력을 이용해 경쟁업체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美 연방 지방법원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의 역사적 판정으로부터 한 주 뒤의 모습으로 결국 세계 최강국인 미국도 세계 최고부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판정을 반영하는 듯했다.

내년으로 예정된 ‘법의 결론’과 함께 최종판결의 기초가 될 잭슨 판사의 통렬한 ‘사실인정’은 몇 가지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를 낳았다. 잭슨 판사는 거의 모든 현안에서 검찰편을 들어줘 美 법무부와 정부의 反독점소송에 가세한 19개 州 검찰당국의 사기를 북돋웠다. 한 정부 관리의 말마따나 “논의되는 해법의 강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해체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그것을 게이츠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리는 만무하다. 그같은 강력한 조치의 전망은 정부편에 섰던 많은 관련업체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재가 사라진 자리에 정부 감독기관의 손길이 들어서는 상황을 원치 않는 실리콘 밸리의 업체들이 그랬다. 많은 기업들이 언젠가 제2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정은 성년으로 접어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고통스런 전환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 기업이 된 지금은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超경쟁력이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게이츠는 “우리는 계속 전진하고 싶을 뿐”이라며 타협의사를 시사했다. 한편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제품인 윈도를 계속 혁신·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잭슨의 최종 판결·명령이 내려지기 전이라도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항소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지금까지의 통상적 가설은 상급법원이 엄격히 사실적 문제를 다룬 잭슨 판사의 판정에 구애받기 때문에 항소과정은 법률문제에 관한 싸움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마이크로소프트의 소송전략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가정에 의문을 달았다.

회사의 궁극적 생존 여부를 떠나 잭슨의 판정은 약 1백9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쌓여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현금창고 문을 열어놓은 것 같다. 톰 밀러 아이오와州 검찰총장은 “소송이 성공하면 민사 배상 자격을 얻는다”며 앞으로 생길 배상금을 계산·분배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는 소식이 또 있다. 집단소송을 제기해 결국 담배회사들의 무릎을 꿇렸던 변호사들 일부가 마이크로소프트측 횡포의 피해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저명한 원고측 변호사 스탠리 체슬리는 “만일 윈도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 밝혀지면 의당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머리 마이크로소프트 대변인은 그에 대해 “끊임없이 가격인하를 단행하고 있는 성공적인 미국 기업에 대해 그런 근거없는 소송위협이 제기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업체와 파트너들도 큰 관심을 갖고 이번 소송을 지켜봤다. 잭슨의 판정을 계기로 실리콘 밸리 업체들은 새삼 자아성찰을 하게 됐다. 그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는 두 가지 원칙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증오와 절대적인 경제자유에 대한 믿음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윈도를 채택하지 않는 저가의 인터넷 PC 판매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시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려는 넷플라이언스라는 회사의 최고경영자 켄트 새비지 같은 사람도 “사기업 부문 스스로 올바른 사업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반면 기업용 언어인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뉘앙스 커뮤니케이션스 같은 경우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제품을 개발해(아니면 2주 전 그랬던 것처럼 관련회사를 인수해) 윈도에 통합시키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바로 그렇게 했다. 윈도에 완전 통합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경쟁제품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시장에서 몰아낸 것이다.
따라서 뉘앙스의 스티브 얼리크 부사장은 “적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분할을 조금이라도 시도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십인십색”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조금이라도’ 분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정부측 변호사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중이라 한다. 가장 극단적이면서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AT&T를 모델삼아 품목별로 회사를 분할해 운영체제·응용 프로그램·인터넷 사업 등 별도의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게이츠에게 불리한 점은 그가 그중 하나밖에 경영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며 유리한 점은 전례상 별도의 회사들이 하나일 때보다 결국 더 가치가 커지기 때문에 그를 비롯한 주주들이 더 부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보다 강도가 떨어지는 대책도 거론됐다. 정부 법률고문 허버트 호벤캠프 교수는 윈도 소유권을 경매에 부치거나 비밀 ‘소스 코드’를 공공 도메인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다른 업체들도 나름대로 윈도 버전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생각을 바꾸거나 적어도 전술을 바꾸지 않는 한 그 어느 방안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양측은 잭슨의 ‘법의 결론’에 대비한 소명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판결을 내리는 데 필요한 다음 단계로 내년 2월께로 예상된다. 그후 항소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잭슨의 사실인정은 반박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일 정도로 단정적이지만 일부 법학자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다.

엘리너 폭스 뉴욕大 법학교수는 “한 소송에서 밝혀진 사실이 어느 한 쪽에만 유리하게 집중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관측통에 따르면 그 소송을 맡게 될 워싱턴 D.C.의 항소법원은 잭슨보다 업계측에 더 우호적인 것 같다.

물론 1년여 뒤에는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정권이 바뀌면 反독점소송을 그다지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정계인맥 관리에 무신경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에는 로비 예산을 3백70만 달러로 배증하고 주로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선거자금 기부를 확대했다.

지난주엔 이제 타협할 때라는 의견들도 나왔다. 실리콘 밸리의 저명한 벤처 자본가 로저 맥나미는 이번 소송이 게이츠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역사적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1세대 기업이며 그 경영자들이 끊임없는 생존경쟁 환경에 처해 있다는 생각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당시에는 공격적 경영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문화가 워낙 강력해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생업체로서 IBM과 경쟁할 때는 허용됐을지 몰라도 IBM의 배 이상으로 몸집이 커진 지금은 그런 경영이 적합하지 않다. 맥나미 같은 사람들은 이제 게이츠가 어른답게 처신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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