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밴드 〈한국록 다시 부르기〉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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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총을 내리고 두 손을 마주잡고 / 힘없이 서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지난 15일 한밤, 서울 서초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힘차고 낭랑한 로커들의 합창이 흘러나왔다.

윤도현밴드의 새음반 〈한국록 다시 부르기 (가제)〉의 머릿곡 '철망 앞에서'의 녹음현장이었다. 김경호· 김장훈· 김윤아· 박기영· 임현정· 박완규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윤도현과 함께 김민기의 유일한 90년대 발표곡(92년)이자 통일에의 염원을 담은 이 노래를 열창했다.

아름다운 선율, 시원한 코러스, 흥겨운 사물놀이 반주가 어우러진 이 곡은 지난 90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해 장벽이 있던 자리에서 연주된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 '어나더 브릭 인 더 월'의 한국판같다. 휴전선이 무너지는 날, 겨레가 함께 합창할 만한 곡이다.

윤도현밴드는 '나 어떡해' '탈춤' '불놀이야' 등 70~90년대 한국록 명곡 11곡으로 채워진 새 음반 속에 이처럼 통일과 반전 등 요즘 가수들이 잊어버린 주제들을 진지하게 표현했다.

이들은 서민적인 풍모, 꾸밈없는 생활태도, 그리고 토종 분위기의 메탈 선율로 '한국 록'의 직계혈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음반은 사실 좀 밑지는 장사다. 원곡의 무게를 살려내면서 요즘 감각도 가미해야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았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석달로 잡았던 녹음기간이 두배로 늘어났다. "차라리 신곡으로 채웠으면 훨씬 쉬웠을 것" 이란 멤버들의 푸념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래도 이들이 이 음반을 만든 데는 수긍할만한 이유가 있다. 공연 막간에 팬 서비스용으로 서양 팝송을 두세곡씩 연주하는 국내 록 무대 관행을 깨고 한국 록 고전들만 연주해온 이 밴드의 자부심을 음반화한 것이기 때문.

특히 '철망 앞에서'와 10년전 숨진 러시아 교포 로커 빅토르 최의 '혈액형', 신중현의 '바람'(73년 김정미가 불렀다)같은 묻혀진 명곡들을 발굴해 내놓은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혈액형'은 전쟁에 끌려가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비장한 저음 보컬과 내레이션으로 표현한 곡으로 이 음반의 한 백미다.

공 들인 흔적이 역력한 편곡도 듣는 재미를 더해준다. '돌고 돌고 돌고'에서는 흥겨운 기타 리프가 신선하며 '깨어나'에선 펑키한 베이스 연주가, '나 어떡해'에서는 피아노 소리로 착각할만큼 독특한 통기타 선율이 각각 돋보인다.

또 기계음을 쓰지않고 직접 손으로 전 트랙을 연주한 드러밍은 꾸밈없는 한국록을 추구하는 이 밴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젊은 소나무처럼 싱그러운 윤도현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 어느 것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기름기 없는 다소 포크적인 목소리로 강렬하면서도 어딘지 쓸쓸하고 연약한 한국록 특유의 느낌을 표현해냈다.

대중음악 평론가 송기철씨는 "재치있고 성실한 편곡·연주로 원곡과는 또다른 맛을 내는데 성공한 음반이다. 세기말에 한국 록을 재조명한 타이밍 감각도 돋보인다." 고 평했다.

음악성:★★★★
대중성:★★★★
(★ 5개 만점, 평가 : 중앙일보 가요팀, 송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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