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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눈눈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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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1507m)까지 15km에 걸쳐 능선이 이어진다.

덕유산(德裕山)은 이름만큼 덕이 많은 산이다. 완만한 능선은 우리나라 모산(母山)의 대표라 할 만하다. 특히 겨울이면 눈이 쉬 녹지 않아 어머니 품 같은 산세가 더욱 동그랗게 살이 오른다.

어진 산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겨울 덕유산은 북한산만큼이나 붐빈다. 무주리조트 곤돌라 덕분이다. 20분 만에 해발 1500m까지 실어다 주는 곤돌라가 있어 겨울 덕유산은 만인의 산이 된다.

글·사진=김영주 기자

향적봉에서 중봉으로 향하는 산행객들 뒤로 덕유산 북쪽에 자리잡은 산봉우리들이 겹을 이루고 있다.

#겨울 덕유산은 국민 관광지

무주리조트 설천베이스에서 설천봉(1520m)으로 올라가는 곤돌라 안. 20∼30대 스노보더와 50∼60대 등산객이 얼추 반반을 이룬다. 젊은이들은 설천봉에 내리기가 무섭게 실크로드 코스를 활강해 내려간다. 중년의 산행객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펼치는 젊은이를 보며 “어이쿠”를 연발한다. 하나 이내 신발끈을 고쳐 매고 향적봉을 올려다본다. 스노보드보다 날렵하진 못하지만 산을 오르는 걸음은 가볍다.

 

향적봉대피소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객들. 쌓인 눈이 1m가 넘는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불과 600m 거리.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 해발 1614m 산을 오르는데, 곤돌라 타고 20분, 산행 20분이 끝이라니. 이보다 더 쉬운 겨울 산이 있을까. 그러나 만만하게 봐선 곤란하다. 특히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진 올겨울은 더욱 그렇다. 산행이 익숙지 않은 초보자는 낙상도 조심해야 한다. 워낙 발길이 잦아 눈길이 반질반질할 정도다. 등산화가 아니면 애당초 갈 생각을 말아야 하며, 산행 들머리에서부터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설천봉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자 모진 바람이 얼굴을 강타한다. 바람은 불과 5분 만에 양볼을 ‘볼빨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게다가 얼굴을 감싼 두건 위로 뿜어져 나온 김이 고글에 맺혀 시야를 가린다. 아무리 코스가 쉬워도 겨울 산은 조심할 것 투성이다.

#몸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

데크로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만 치고 올라가면 바로 향적봉 정상이다. 정상에 서자마자 귓불 부근에서 휘파람 소리가 맴돈다. 마치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가 지나는 것처럼 앵앵거린다. 한겨울 향적봉에서 초속 10∼15m의 바람은 예사다.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 것도 성가시다. 목이 자라 목처럼 본능적으로 움츠려진다.

  겨울 덕유산은 자랑거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상고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을 때 대기 중 습기가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하얀 눈꽃을 형성하는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눈꽃. 나뭇가지에 내린 눈이 채 녹아내리기 전에 추위를 만나 가지 위에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자랑거리가 보이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는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눈마저 말끔히 날려버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산 정상의 일기는 수시로 변화한다. 앙상한 가지가 휘어질 듯이 눈이 쌓이는 순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만약 그와 같은 풍경을 조우했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16일부터 주능선 탐방로 통제

향적봉 정상에서 주위를 내려다봤다. 시선을 남동쪽으로 두는 순간, 지리산 주능선에 그만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푸른 하늘 아래 유장하게 뻗은 지리산 능선.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약 30㎞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리산에 서서 이쪽을 봐도 똑같은 느낌일 것이다. 마치 지리와 덕유 두 신선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

 덕유산 능선 종주를 포기한 마당이어서 향적봉을 중심으로 이쪽 저쪽, 무주 안성 방면과 경남 거창 방면의 능선을 두루두루 밟고 다녔다. 처음엔 중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는 불과 1㎞, 15분 거리다. 중봉에 서면 동업령을 거쳐 남덕유로 뻗어나가는 장쾌한 덕유산 능선을 볼 수 있다. 향적봉으로 되돌아와서는 구천동 방향으로 하산을 시도했다. 백련사를 거치는 길. 덕유산 산행에서 가장 일반적인 코스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산불 방지 입산통제 기간이 예년보다 한참 앞당겨졌다는 소식이다. 국립공원에 속한 모든 산의 주요 탐방로가 이달부터 통제를 시작했다. 설악산은 대청봉을 오르는 모든 탐방로가 통제되며, 지리산 천왕봉은 중산리 방면에서만 오를 수 있다. 덕유산의 경우 16일부터 통제가 시작된다. 덕유산 능선은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만 출입이 허용되며, 진입로는 설천봉∼향적봉∼백련사 구간만 개방된다. 마침 그 구간을 밟고 다녔다. 봄에도 눈 구경을 할 수 있는 산길이다.

해돋이투어를 위해 스키슬로프를 거슬러 덕유산 설천봉(1520m)까지 올라가는 스노모빌.


덕유산 산행정보 오는 15일까지만 향적봉~삿갓재 주능선 14.8㎞ 트레킹이 가능하다. 오전 9시에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경우 약 8~9시간 걸린다. 그러나 삿갓재에서 거창군 영각사 방향 하산 길이 구제역 때문에 막혀 있다. 되돌아와서 무주리조트 곤돌라를 타거나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주능선 종주는 1박2일 일정을 잡아야 하며, 장비는 물론 풍부한 산행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밖에 향적봉~백련사(4시간), 향적봉~송계사(5시간), 향적봉~안성(5시간) 코스가 있다. 무주리조트(www.mujuresort.com) 곤돌라 요금은 왕복 1만2000원, 편도 8000원. 063-322-9000.

덕유산 설천봉의 일출.

스노모빌 해돋이 투어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면 새벽 산행을 감수해야 했다. 관광 곤돌라가 오전 9시부터 운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 무주리조트가 올해 시작한 스노모빌 해돋이투어다. 설천베이스에서 설천봉 정상까지 스노모빌을 타고 올라가 일출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투어 상품이다. 120마력 ‘스노캣’ 스노모빌은 경사 50도의 슬로프를 힘차게 역주행한다. 빨리 달릴 때는 시속 40~50㎞까지 내달린다. 6.1㎞ 슬로프를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리조트 직원이 운전을 맡는다. 오전 6시엔 출발해야 일출에 맞춰 향적봉에 다다를 수 있다. 편도 3만원, 왕복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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