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천안함 폭침 배후 김영철 내세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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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 실무회담이 8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북측 수석대표 이선권 대좌(오른쪽)와 대표단이 한국군의 안내로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김영철 정찰총국장

북한이 8일의 남북 군사 실무회담에서 고위급 군사회담을 김일성 생일 하루 전인 4월 14일 열자고 제의한 것은 대화에 임하는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촉구한 남북 대화의 모양새는 갖췄지만 체제 선전장으로 몰고가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4월 15일은 북한이 태양절로 부르는 명절이다. 특히 올해 생일은 북한이 정한 주체연호 100주년이다. 이 일정 제시는 우리 정부가 요구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공격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천안함·연평도 의제와 관련해서도 남북한은 맞섰다. 우리 측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북측의 책임 있는 조치와 추가 도발 방지 확약이 있어야만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북측은 “천안호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쌍방 군부 사이 상호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을 중지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만을 다루고자 하는 것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등에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측은 이에 대해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천안함·연평도 문제에 만족할 만한 결과가 도출되면 그 다음 날이라도 북측이 제기한 상호 관심사안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북한이 4월 14일 회담을 열자고 한 것은 고위급회담을 내부의 권력 강화에 맞추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며 “북한의 대화 진정성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남측은 북측 제안을 거부하고, 5~6월 중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대표의 격(格)을 둘러싸고도 남북한은 맞섰다. 북한은 장관급 회담이나 합참의장(남)과 총참모장(북) 간 회담이 아닌 차관급 회담을 주장했다. 회담에 정통한 관계자는 “북측은 상장(우리의 중장)인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부총참모장 등의 모자를 씌워 회담 대표로 내세우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김정은 후계 확립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 도발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김영철은 2007년까지 남북장성급회담 대표로 판문점을 들락거린 대남 협상통이기도 하다. 북한은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김영철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들의 도발을 정당화하면서 주민들에게 ‘선군정치의 성과’를 선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 당국자는 “대화의 문은 열어놓고 있다”며 “그러나 과거처럼 북한의 선전무대에 들러리를 서거나 그들의 의지대로 끌려다니는 회담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 “남하 주민·선박 돌려 달라”=북한 조선적십자회는 8일 대한적십자사에 전통문을 보내 지난 5일 서해 연평도 인근 NLL을 통해 남하한 북한 주민 31명(여성 20명)과 선박의 송환을 요구해 왔다고 통일부가 이날 밝혔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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