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혁명’ 영웅으로 떠오른 고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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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집트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구글 임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끌어낸 민주화 시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실종됐다 7일 이집트 당국에 의해 석방된 구글 중동·북아프리카 마케팅 책임자 와엘 고님(Wael Ghonim·사진)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번 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한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로 밝혀졌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을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지난달 25일 카이로 중심가 타흐리르 광장에 젊은 시위대를 결집시킨 건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였다. 그 중심엔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었다. 칼레드 사이드는 지난해 6월 경찰의 폭행으로 숨진 29세 청년 사업가였다. 부패 경찰이 마리화나를 나누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렸다 변을 당했다. 그의 억울한 죽음은 이집트 젊은이를 각성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이 소식을 접한 고님은 SNS를 통해 이를 알리고자 ‘내 이름은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페이지는 곧 페이스북에 의해 폐쇄됐다. 그러자 아랍어와 영어로 된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라는 페이지가 곧바로 등장했다. 금세 47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반정부운동의 사이버 본부가 됐으나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베일에 가려졌다. 이 페이지는 지난달 15일 타흐리르 광장 시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가장 먼저 올렸고, 이 소식은 SNS를 타고 삽시간에 이집트 전국으로 퍼졌다.

 고님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우리는 1월 25일 죽을 각오가 돼 있다”는 글을 올리며 시위에 가담했다. 지난달 27일 밤 친구 집을 나서던 그는 네 명의 괴한에게 납치됐고 며칠 동안 눈가리개를 한 채로 지내야 했다. 그의 실종 사실이 알려지자 SNS는 물론 국제인권단체도 그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이집트 당국은 7일 그를 풀어줬다. 그는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거리에 나선 젊은이들 덕에 풀려났다”며 “내가 영웅이 아니라 거리에 나선 모든 이가 영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 페이지의 관리자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강경 반정부 시위 지도자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 지지자이기도 하다. 엘바라데이 진영의 자원봉사를 자청해 인터넷 캠페인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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