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측 4남매 “유산 100억 다 달라” vs 남측 4남매 “30년 전 떼 줬는데 …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100억원대 유산을 놓고 다투던 남한과 북한의 이복 형제자매들이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유산 분배를 법원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 황윤구)는 윤모(68)씨 등 북한 거주 형제자매 4명이 “1987년 숨진 아버지의 유산 100억원을 분배해 달라”며 남한의 새어머니(77)와 이복 형제자매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조정 합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조정은 30분여 만에 결렬됐다. 북한 측은 “남측 형제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양도받은 재산이 많으니 상속받은 유산을 모두 북한 형제 몫으로 달라”고 주장했다. 남한 측은 “이미 30년 전 북한 형제자매 몫 재산을 주지 않았느냐”며 반발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조정을 시도하지 않고 다음 달 18일 재판을 다시 열기로 했다.

 북한 가족을 대표해 이날 조정에 나온 건 맏딸(76)이다. 맏딸은 아버지와 함께 1·4 후퇴 때 월남해 한국에 살고 있다. 그는 북한에 있는 친 형제자매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2009년 소송을 냈다. 맏딸은 “아버님이 남한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증여한 재산이 굉장히 많지 않느냐”며 “청구한 부동산 모두를 북한 형제자매들 몫으로 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남한 쪽 장남은 “서울 영등포에 있는 내 땅 660㎡를 북한 형제자매들 몫으로 이미 약 30년 전에 누님께 양도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맏딸은 “북한 형제들 몫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아직 상속 등기가 안 된 시흥의 임야 33만㎡를 북한 형제자매들에게 양도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남한 측 장남은 “이 소송이 보도된 뒤 북한에 형제자매가 있는 줄 알면서도 우리만 상속을 받으려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됐다”며 거부했다. 장남은 “만약 합의를 하게 된다면 그런 시각이 오히려 굳어질 것”이라며 “재판부의 최종 판단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이 소송은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12월 윤씨 등이 법원에서 친자 확인을 받을 때까지 1년2개월간 중단됐었다.

◆선교사 통해 소송 준비=윤씨의 아버지는 1951년 맏딸만 데리고 월남했다. 그는 59년 재혼해 4명의 자녀를 뒀다. 개인 의원을 운영해 부동산도 많이 남겼다. 고인의 맏딸은 2005년 일본에 거주하는 친외삼촌을 통해 북한에 형제자매 4명이 살아 있으며 ‘월남자 가족’으로 몰려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맏딸은 2008년 북한을 자주 오가는 재미동포 선교사에게 부탁해 형제들을 찾아냈다.

 이 무렵 고인이 남긴 부동산에 대해 남한의 가족만을 대상으로 한 상속 등기 절차가 끝났다. 큰딸은 선교사를 통해 북한의 형제자매들에게 부친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친자확인 및 상속권회복청구 소송을 위임할 것인지 의사도 물어봤다.

 윤씨 등은 자필 진술서와 소송위임장, 유전자 검사를 위한 머리카락과 손톱 및 이를 채취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 공민증, 북한 당국이 관리하는 주민대장, 주민등록 문건 등을 선교사 편에 보냈다. 지난해 6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검사 결과 북한 형제자매와 큰딸, 이복 형제의 유전자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희령 기자

재판 궁금증

Q. 남북 주민 간 접촉이나 연락은 불법 아닌가.

A. 남한 주민이 북한 주민과 대면하거나 중개인을 통해 의사를 교환할 때는 사전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에 있는 가족과 접촉하거나 북한 가족의 생사 확인을 위해 다른 북한 주민을 접촉한 경우 등은 사후 신고로 가능하다.

Q. 남한에 있는 유산 받아 북한에서 쓸 수 있나.

A. 북한 주민이 남한 내 재산에 대해 실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법무부는 북한 주민이 남한 재산을 국외로 반출할 경우 정부 허가를 받지 않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을 지난달 입법예고했다.

◆조정=소송 당사자들 사이에 법원 등 제3자가 개입해서 합의를 유도하는 것. 법원의 확정 판결과 똑같은 법적 효력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