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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전설' 을 만나다. 64세 엘튼 존 "미친 인생 살았다…기회 오면 뭐든 할 것"

미주중앙

입력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들 키키리를 품에 안고 있는 엘튼 존과 그의 동성 파트너 데이비드 퍼니시가 등장한 US매거진 표지.

엘튼 존이 떴다. 흔치 않은 기자회견 나들이에 나선 것. 그것도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인 데이비드 퍼니시와 함께다. 두 사람이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Gnomeo & Juliet.11일 개봉)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엘튼 존은 이 영화의 음악도 직접 맡았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회견장인 베버리힐스 포시즌 호텔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모두 깍듯하게 '엘튼 경'(Sir Elton)이라 그를 불렀다. 까만 정장에 까만 선글래스를 끼고 나타난 엘튼 존은 시종 빠르고 거침없는 말 솜씨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을 예사로 만나는 기자들에게도 '엘튼 존 경'은 그만큼의 존재감을 지닌 거성이었다. 다음은 '노미오와 줄리엣' 기자회견에 나선 엘튼 존과의 일문일답.

-영화의 총괄제작자로 나선 것은 처음입니다.

"맨 처음 기획단계부터 11년 동안 준비했던 영화입니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어요. 사실 총괄제작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할 겁니다. 제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전화거는 일'이었요. 제작 과정에서 위기가 오거나 풀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필요한 영화계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 엘튼 존인데…'라고 하면 솔직히 남들보다 두 세배는 빨리 일을 해결할 수 있었죠. 전화통을 붙잡고 '좀 만납시다' '이럴 순 없잖아 좋은 해결 방법을 찾아봅시다' 한 게 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자신의 유명한 히트곡들로 영화 OST를 만든 느낌은 어땠나요.

"처음엔 제 음악으로만 채울 생각은 없었는데 영화사측에서 제안을 했습니다. '엘튼 존 음악으로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이란 아이디어가 그들에겐 아주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듣고보니 저도 좋은 생각이겠다 싶어 동의했습니다. 완성시켜놓고 보니 '엘튼 존 음악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받아들여지기 보단 그냥 '좋은 음악이 덧입혀진 재미난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싶군요."

-삽입곡 중 '헬로헬로(Hello Hello)'라는 신곡을 레이디 가가와 함께 불렀습니다.

"레이디 가가는 제 새로운 베스트프렌드입니다. 함께 듀엣 할 만한 사람을 오랜 기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작년에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기금모금차 우리집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그녀가 참석해 이틀간 머물다 갔어요. 그때 장난삼아 툭 치면서 '나랑 듀엣 한 번 해볼래?'했더니 금방 승낙하더군요. 좋아 죽는 줄 알았죠. 그 바쁜 스케줄 와중에도 너무도 훌륭히 이 노래에 마법을 불어넣어 줬어요."

엘튼 존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노미오와 줄리엣' 이 11일 미국에서 개봉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선 팝스타 엘튼 존. 그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객석을 휘어잡는 열정을 보였다. [AP]

'노미오와 줄리엣' 만든 엘튼 존
증오라는 건 정말 헛되고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

-'노미오와 줄리엣'에서 빨강과 파랑으로 나뉘어 반목하는 정원인형(Gnome)들을 보면 미국 정치권의 민주.공화 대립이 연상됩니다. 애리조나 투산의 비극도 떠오르고요.

"영화를 처음 기획한 11년 전에 오늘날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예상했었던 것이라면 전 완전 '미친 천재'였겠죠.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엔 분명 갈등과 분열을 끝내고자 하는 긍정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무엇이든 양극화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바보같은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영화 속 노미오와 줄리엣의 부모가 그렇듯 아이들이 내 생각을 그대로 따르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게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얼마 전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작은 콘서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저를 도와주던 2명의 변호사가 있었어요. 한 사람은 열혈 민주당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열혈 공화당원이었지만 모두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으로 하나가 돼 힘을 합쳤죠. 전 이런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증오란 것은 정말 헛되고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인데 혹시 윌리엄 왕자 결혼식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 있습니까.

"안합니다. 전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잘 몰라요. 저보다 훨씬 젊고 매력적인 누군가가 공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가장 미국적인 팝 뮤지션으로 유명한)배리 매닐로우도 좋고요… 하하. "

남자-남자 부부 엘튼 존
대리모로 얻은 아들 재커리
기저귀 갈며 행복 느껴

-얼마 전 아빠가 됐는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워낙 대자(代子.Godson)도 많고 조카들도 많았지만 제 스스로가 아빠가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커리를 품에 안고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 바로 지금이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아기에게서 나는 향기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큰 기쁨과 따스함을 느끼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많은 이들에게 축하를 받는 것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집에 가면 온통 재커리가 잘 먹는지 잘 입는지 트림은 잘 하고 있는지 기저귀 갈 때는 안 됐는지를 신경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재커리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삶이 너무도 평온해지고 안정된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이 작은 영혼을 다독이며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이는 지금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하얀 팔레트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캔버스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 아이가 많은 사랑을 받고 가진걸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합니다."

-여전히 왕성히 라이브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 설 때 과거와 다른 점이 있습니까.

"라이브 무대는 언제나 그랬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서는 느낌은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제 인생에 균형이 잡혔기 때문인듯 합니다. 편안한 집 멋진 파트너 좋은 친구들 사랑하는 아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 주제가) 이죠. 이젠 무대 위에서도 제 삶을 더 찬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아직도 배고픈 엘튼 존
내 삶 영화로 만들고 싶어
새롭고 재미난 일 계속 할 것

-요즘 세대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모든 음악을 존중합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어릴적부터 스윙과 재즈를 즐겼습니다. 로큰롤은 제 인생을 바꿨고 모타운 출신 팀들의 사운드와 R&B에도 심취했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즐겨듣는 음악은 카니에 웨스트의 새 앨범입니다. 영국 출신의 젊은 소울 아티스트 플랜 B의 음악도 아주 좋아합니다. 전 새로운 것이 좋습니다. 젊은 아티스트 새로운 음악이 갖는 에너지는 강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받아들일때 정체돼 있는 기성세대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 아티스트가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발레를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하하. 제 라이프스토리를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미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를 함께 작업했던 작가와 초반 작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이외에도 뭐든 기회가 오면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 인생은 99%가 즉흥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큰 야망을 갖고 인생의 목표나 전략을 갖고 살고 싶진 않습니다. 제 인생의 다음 코너에 무엇이 있을지 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갑작스레 또 다른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재미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경민 기자 rache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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