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축산업 허가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금지를 제외한 규제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허가제다. 어느 사회나 있고 역사 또한 공동체의 발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이 땅에 아주 센 놈이 도입됐다. 토지거래허가제다. 땅값이 급등하는 곳이나 투기거래가 성행하는 지역의 땅은 시·도지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으로 내 맘대로 땅을 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2004년 8월에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라는 것도 생겨났다. 사업주가 노동부의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내국인을 고용하려고 한 달 이상 노력했으나 성과가 없을 경우 인력부족확인서를 받아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상고허가제라는 것도 있었다. 항소심이 끝난 사건의 당사자가 상고를 희망할 때 대법원이 허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무분별한 상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주요 사안에 심리를 집중하자는 취지로 1981년 대법원이 도입했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한 세 번 재판 받을 권리와 재판청구권을 제한한다는 주장에 밀려 90년 폐지됐다. 규제라는 것은 이처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규제를 필요로 하던 여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때문이다. 경제 관련 규제는 정부 간섭을 줄여야 기업이 잘된다는 논리가 확산하면서 갈수록 설 땅을 잃고 있다.

 하지만 규제가 절실한 상황은 언제나 온다. 요즘 화두는 축산업 허가제다. 소·돼지를 키우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역 재앙이 가져온 여파다. 정부는 두 발굽 동물이나 조류를 키우는 면적이 50㎡(약 15평)를 넘는 농가에 대해 사업 허가를 받도록 올가을 정기국회에 축산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사태가 농장 관계자들이 해외 여행을 다녀온 뒤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라 보기 때문이다.

 축산업 허가제는 이 분야 선진국인 덴마크와 네덜란드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규제의 신설 방침에 소규모 국내 축산농가의 저항은 세다. 그러나 가족 같은 가축을 산 채로 매장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실패하면 외국산 육류가 마구 밀려올 판이다. 이웃 중국은 사육하는 돼지 수가 4억6000만 마리나 되는 세계 최대의 양돈 국가다. 미국과 호주 쇠고기는 이미 우리 냉장고를 채우고 있다. 그냥 있다간 한우·한돈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심상복 논설위원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