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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잘 뿌린 복지의 씨앗은 모두의 행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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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일러스트=박향미

새해 달력을 하나 걸기로 했다. 늘 방에 걸었는데 올해는 잘 보이도록 거실에 매달기로 했다. 행운목 옆 잘 보이는 벽이 딱이다. 그래서 그 벽에 못을 박는데, 못이 너무 짧아 그냥 빠진다. 다시 큰 못을 찾아 망치질하는데 이번엔 못이 들어가질 않는다. 벽지를 뜯어볼 수도 없고, 난감해하다 냅다 박았더니 못대가리가 부러진다. 할 수 없이 손으로 이곳 저곳을 살피고 만져 ‘이곳이다’ 싶을 곳에 못을 세게 치니 구부러졌다. 달력을 볼 때면 삐딱하게 내걸린 게 신경이 쓰인다.

 최근 정치권에 복지논쟁이 뜨겁다. 뜨겁다 못해 복지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이처럼 복지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복지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 근원적인 문제, 복지모델과 그 내용의 문제,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재원조달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주제가 난무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복지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선 참 고무적인 일이다. 이처럼 복지담론이 홍수를 이루었던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잘 박은 못 하나’가 참으로 중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잘 박은 못 하나가 반듯한 달력을 만날 수 있듯,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선 제대로 못을 박아야 한다. 나무와 나무를 잇기 위해, 여러 구조를 짜 맞추기 위해, 또 그 자리에 꼭 박혀 그 무엇으로도 끄떡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곳엔 꼭 못을 박아야 한다. 그러니 잘 박은 못 하나가 세상을 이기고, 튼튼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라는 말에는 세상의 어떤 단어보다 참 따뜻한 말들이 박혀있다. 그 따뜻한 말, 즉 사랑에는 ‘수고’라는, 소망에는 ‘인내’라는 못이 박혀야 그 맛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요즘처럼 자주 그리고 많은 눈이 내리는 때도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식당에 갔다. 새로 지은 식당이라 깨끗하고 반듯해 몇 번 들른 곳이다. 그날따라 날씨도 춥고 밖엔 눈이 와, 그 습기 찬 식당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웠다. 목발을 짚는 나로서는 새롭게 짓는 건물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왜냐면 왁스칠한 듯 반들반들한 바닥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과 조심, 집중하며 목발 질을 해도 번번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미끄러운 바닥의 식당인 것을 알기에, 그리고 눈이 오면 습기 때문에 더 미끄럽다는 것을 온 몸이 느끼기에 조심했지만 들어서는 순간, ‘꽈당’ 넘어졌다. 아픈 건 둘째고 창피함이 앞을 가렸다. 사장과 종업원들이 달려와 사과하고 죄송하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일어나 털며 이런 반들반들한 바닥은 목발을 짚는 우리에겐 독이니, 물기가 없도록 늘 닦아야 한다고 투덜거렸다. 얼마 후 다시 들른 그 식당은 왠지 미끄럽지가 않았다. 그래서 물기가 없도록 잘 닦고 있는가 보다 생각했다. 식사 후 나오면서 덜 미끄러운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사장은 목발을 짚는 나뿐 아니라,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자주 미끄러져 돈을 들여 바닥코팅을 했노라고 한다. 족히 한 달 수입은 될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 그것도 하루라도 당겨 작업을 끝냈다는 말에 그 마음에 박힌 ‘사랑의 수고’라는 못이 참 잘 박혔다는 생각을 했다.

 영리에 눈이 어두운 세상 속에 그 식당의 사장이 내민 손은 평범함이 갖는 특별함을 깨닫게 한다. 꽁꽁 얼어붙은 혹한의 겨울,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타인의 삶과 마음을 위해 잘 박은 못 하나 보여줄 수 있는가.

 갑자기 복지의 특별함을 흔적으로 남기기 위한 전쟁이 산지사방으로 얽히고 설켜 일어나고 있는듯하다. 복지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 또는 시혜물이 아니다. 식당 주인처럼 불편함을 흐르는 강물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에 등장하는 많은 평범한 주인공들이 만들어가는 잘 박은 못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류시화 시인은 ‘별에 못을 박다’라는 시에서 ‘어렸을 때 나는/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흔적이 아닐까 하고/생각했었다. 별들이 못 구멍이라면/그건 누군가/아픔을 걸었던/자리겠지’하고 노래했다. 밤하늘의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며, 그러기에 누군가의 아픔으로 빛나는 것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보며. 적어도 복지에 잘 박은 못 하나가 되기 위해선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깃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복지는 만인의 것이지만 한 사람의 행복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을 우리가 내민 마음의 손길을 통해 길을 내며, 누군가의 아픔을 흐르게 하는 실천으로부터 행복의 똑바른 모습은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우리가 잘 박은 못 하나, 그 모습으로…

글=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일러스트=박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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