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꿈을 후원합니다 ① ‘목포 신동’ 장가행·신행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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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꿈이 있어 행복한 아이들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멘토’와 이어 주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롤 모델에게서 직접 조언을 듣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꿈을 실현시켜 주자는 취지다. 많은 청소년이 희망의 문을 두드려 주길 기대한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독자들의 후원도 받을 예정이다.

문의 : 중앙일보 사회부

장한나 같은 음악가가 되길 꿈꾸는 장가행(왼쪽)·신행 자매는 겨울방학인 요즘 목포 집 근처 연습실에서 밤늦게까지 연습한다. [오종찬 프리랜서]

신행이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엄마, 이게 내 꿈이야.” 사진 속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첼리스트 장한나(사진)가 있었다. 음악에 완전히 몰입한 듯 얼굴을 찌푸린 채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전날 밤 신행이는 장래 희망을 적어 오라는 숙제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 김경란(41)씨는 “판사나 변호사, 아니면 선생님을 쓰면 어떨까”하고 화제를 돌리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첼로를 손에 쥔 후 줄곧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던 아이였다. 성씨도 같은 한나 언니처럼 되겠다며 연주할 때 표정을 따라 할 정도였다. 두 살 터울의 언니 가행이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신행이 아빠·엄마에게는 자매를 뒷받침해줄 돈이 없었다. 엄마는 차라리 아이들이 다른 꿈을 갖기를 바랐다.

 장가행(14·목포 항도여중 2학년), 신행(12·광주교대 목포부설초 5학년) 자매는 목포에서 태어난 바다 소녀다.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후 활동인 ‘1인 1악기’ 프로그램 덕에 악기를 처음 접했다. 일주일 세 번, 점심시간 중 5분이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연주를 잘했다. 개인 레슨을 받는 친구들보다 실력이 월등했다. 자매는 전남청소년교향악단에서 활동했다. 콩쿠르에 나가 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했고, 슬럼프도 없었다. 주변에선 “재능을 이끌어 줄 선생님을 만나면 서울의 명문대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신행이가 장한나의 사진을 내밀었던 지난해 봄, 엄마는 가슴 저린 선언을 했다. “아빠 택시를 팔지 않으면 너희들 음악을 시켜줄 수 없을 것 같다”고. 신행이 가족은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빚을 내 마련한 개인택시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모가 중학교에 진학한 가행이의 레슨비를 보탰지만 그것마저 어려워졌다. 속 깊은 아이들은 부모님이 볼까봐 학교 음악실에서 눈물을 훔쳤다.

장가행·신행 자매가 장한나에게 보낸 편지.

 자매에게 기회가 온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국내외 저소득층 어린이 교육·복지를 지원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인재양성 지원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의 아동·청소년 중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가행이는 “지난 1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자매는 올 한 해 개인 레슨비, 악기 등을 지원받게 됐고, 자원봉사로 지도해줄 선생님도 소개받았다. 얼마 전에는 재단이 주최하는 음악회에서 전남교향악단과 협연도 했다. 트로트만 듣던 아버지는 이젠 택시에서 하이든과 생상스의 음악을 듣는다. 승객이 탈 때마다 “우리 딸들이 협연했던 곡”이라며 자랑한다.

 타고난 천재성과 노력으로 세계적인 첼리스트의 반열에 오르고, 한국의 위상을 높인 장한나는 자매의 ‘꿈’이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모습도 본받고 싶다. 자매는 음악의 길을 다시 걷기로 하면서 제일 먼저 ‘장한나 선생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저희를 소개하려니 자꾸 심장이 두근거리고 꿈을 꾸는 것 같아서 서로 볼을 꼬집어 보고는 ‘아야!’ 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선생님의 연주는 특별했어요. 선생님처럼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희의 멘토가 되어주세요.”

 장한나를 직접 만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자매는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가행이는 “선생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주하고 싶어요. 아, 그러면 그때는 저희도 유명한 스타가 되어 있겠죠?”라고 말했다.

목포=김효은 기자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후원 문의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1588-1940(www.childfund.or.kr)

◆멘토(Mentor)는=오랜 경험을 쌓아 신뢰할 수 있는 스승·조언자를 이르는 말.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출전하며 친구인 멘토에게 자신의 아들을 맡긴 데서 유래했다. 멘티(Mentee)는 지도를 받는 제자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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