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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구호, 눈높이 맞춰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04호 31면

아이티 강진이 발생한 지 1년쯤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아이티는 여전히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콜레라다. 지난 1년간 1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도 40여만 명이 이 병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콜레라는 흔히 ‘가난의 병’으로 불린다. 깨끗한 물이 없고 위생상태가 나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때문이다. 아이티 국민은 집 주변의 강이나 시냇물을 마시는데 이런 식수를 통해 계속 콜레라가 퍼지고 있다. 콜레라 환자들의 설사가 다시 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이 전염병은 결국 퇴치할 수 없다. 지진 발생 후 전 세계 구호단체들은 도시 위생과 관련한 작업을 계속해왔다. 주민들의 분변을 비우고 청소를 하는 데 1인당 10달러 넘는 비용을 썼다. 또 분변을 치우는 트럭을 불러 이를 도시 외곽으로 옮겨 땅에다 버리는 데만 매일 수천 달러의 돈을 썼다.

그렇다면 아이티에서 현재 가장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소셜 웹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티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은 쉽게 화장실을 만들고 분변을 처리하는 기술이다. 아이티에 이런 기술을 실제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소일(SOIL)이라는 업체는 300개의 특수화장실을 이용해 사람 분변을 드럼통에 모아 건식 처리한 다음 비료로 바꿔주고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콜레라를 일으키는 세균과 다른 병원체를 없애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비료가 생산된다. 아이티 국민을 구해주는 기술은 결국 이런 종류의 기술일 것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 도시인 뮬라보에 대형 쓰나미가 있었다. 많은 국제구호단체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는데 그중엔 8대의 신생아 인큐베이터가 있었다. 국제구호단체들이 몇 년 뒤 이 도시 병원들을 방문해 현황 파악을 한 결과 인큐베이터는 모두 고장 나 못 쓰는 상태였다. 전력 사정이 나빠 전압이 불안정하고 열대우림 특유의 날씨로 습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현지 병원 기술자들은 영문 매뉴얼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해 고가의 인큐베이터는 고장 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MIT 연구자들이 세운 단체에서는 값이 싸고 고장이 잦지 않고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를 개발했다. 이 새로운 제품은 겉 보기엔 다른 일반적인 인큐베이터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부 부품들을 보면, 어디서나 비교적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자동차용 부품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게 두드러진다. 헤드라이트를 개조해 신생아 몸을 덥히는 발열판으로 활용하고, 대시보드 팬을 활용해 필터와 통풍 기능을 구현했다. 또 흔히 구할 수 있는 도어벨을 알람경고에 이용하는 식이다. 이들 부품은 모두 자동차의 시가잭에 간단히 연결할 수 있어 어떤 자동차 배터리도 파워로 활용할 수 있다. 현지에서 모든 부품을 조달할 수 있고, 자동차 정비공이라면 누구나 수리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대에 4만 달러나 하는 첨단 인큐베이터를 기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지역에서 단지 설계도와 디자인, 그리고 지역에서 조달 가능한 스페어 부품들만으로 그보다 훨씬 기능성이 뛰어난 인큐베이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티의 경우에도 콜레라 환자들을 치료하려면 훌륭한 의료진을 파견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화장실 기술 하나를 개발하는 사회·경제적 가치도 돈으로 따질 수 없다. 기술을 아는 사람들이여, 매 순간 눈앞의 비즈니스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과 사회를 구하는 착한 기술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기술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정지훈 한양대 의대 졸업 뒤 미국 남가주대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하이컨셉&하이터치’ 블로그 운영자. 의학·사회과학·공학의 융합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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